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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죽헌고택 공식 관광정보


+4일반적인 옛날주택의 공간구성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다르고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주택의 배치와 평면구성에 있어서도 대가족제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려는 의식에 따라 거처하고 활동하는 공간이 따로 구분되었다.이 집은 한국 농촌의 전형적인 양반집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집은 전체적으로 동남향을하여 배치되었고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헛간과 곡간체가 있다.여인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인 안채는 '一'자형으로 앞.뒤에 툇간이 있으며, 좌측으로부터 작은방 1칸, 대청 2칸, 큰방 2칸이다. 주춧돌 위에는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단은 다듬은 돌을 바르게 쌓았다. 남자들의 생활공간인 사랑채는 '一'자형 5칸 겹집이며 낮은 기단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은 보이는 곳은 원형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집 앞의 솟을대문에는 건물을 지은 내력, 날짜와 시간 등을 적은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어 1949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나 사랑채는 시기가 훨씬 올라가 20세기초(1910년대)로 추정된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8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6.02.07
- 지정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마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통과도로에 인접해 있다. 집앞 솟을대문에는 상량문이 남아 있는데 「숭정기원후오회갑기축삼월초칠일임자무신시주립십구일갑자기사시상량」이라 기록되어 있어 1949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나 사랑채는 연대가 훨씬 올라가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집앞에는 두 그루의 노거수가 서있고 그 뒤에 몇단의 계단을 오르면 솟을대문이 서향하여 자리하며 대문 좌측으로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는 대문에서 상당히 많은 계단을 오르도록 하였고 문 없이 담사이를 비워 놓아 통행하도록 계획하였다. 이 뒤가 바로 안마당이며 안마당 뒤에 안채가 입구와 축을 맞춰 배치되었다. 안마당 북쪽으로는 광채가 세로로 배치되고 안채 남쪽 후면에 단을 달리하여 사당을 두었다. 사랑채 후면과 안마당사이에는 나즈막한 담을 쌓고 계단을 두어 사랑채에서 안마당으로 바로 진입토록 하였다. 사랑채 북쪽에는 조그마한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못 가운데에는 조그만 섬이 있고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다. 구릉지에 축조되어 담장과 사랑채, 안채의 지붕면이 위계(位階)가 있으며 정연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안채는 一자형 6칸 전후툇집이며 겹집의 형태이다. 간살이는 북쪽 앞 2칸은 부엌이며 뒷 2칸은 좌우 방이다. 다음이 큰방이고 중앙은 2칸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며 우퇴가 시설되어 있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다. 대공은 판대공인데 둥글게 어깨를 굴렸다. 주춧돌은 화강암 가공석으로 네모꼴이며 그 위에는 사각기둥을 올렸다. 기단은 다듬돌 바른층쌓기 세벌대 높이이며 장대석 마감을 하였다. 지붕은 합각이다. 사랑채는 4칸 전후퇴집으로 간살이는 북쪽에서부터 앞칸은 방이고 뒷칸은 헛간으로 되어 있고, 다음 2칸의 앞칸에는 크게 방을 두고 뒷칸에도 좌우로 방을 두었다. 맨 끝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각 툇간에는 창고방이 시설되어 있다. 사랑채 전면에 햇볕을 막는 시설이 되어 있고 북쪽에는 누마루를 시설하였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 기둥에 창방을 돌리고 보아지를 끼웠으며 그 위에 주두를 놓았다. 도리의 모서리는 면으로 접고 장혀를 받쳤다. 보이는 곳만 원형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며 낮은 덤벙주춧돌을 놓았다.
- 수량
- 일곽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불가능
- 전화
- 061-86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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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죽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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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6.02.07
- 지정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마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통과도로에 인접해 있다. 집앞 솟을대문에는 상량문이 남아 있는데 「숭정기원후오회갑기축삼월초칠일임자무신시주립십구일갑자기사시상량」이라 기록되어 있어 1949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나 사랑채는 연대가 훨씬 올라가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집앞에는 두 그루의 노거수가 서있고 그 뒤에 몇단의 계단을 오르면 솟을대문이 서향하여 자리하며 대문 좌측으로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는 대문에서 상당히 많은 계단을 오르도록 하였고 문 없이 담사이를 비워 놓아 통행하도록 계획하였다. 이 뒤가 바로 안마당이며 안마당 뒤에 안채가 입구와 축을 맞춰 배치되었다. 안마당 북쪽으로는 광채가 세로로 배치되고 안채 남쪽 후면에 단을 달리하여 사당을 두었다. 사랑채 후면과 안마당사이에는 나즈막한 담을 쌓고 계단을 두어 사랑채에서 안마당으로 바로 진입토록 하였다. 사랑채 북쪽에는 조그마한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못 가운데에는 조그만 섬이 있고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다. 구릉지에 축조되어 담장과 사랑채, 안채의 지붕면이 위계(位階)가 있으며 정연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안채는 一자형 6칸 전후툇집이며 겹집의 형태이다. 간살이는 북쪽 앞 2칸은 부엌이며 뒷 2칸은 좌우 방이다. 다음이 큰방이고 중앙은 2칸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며 우퇴가 시설되어 있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다. 대공은 판대공인데 둥글게 어깨를 굴렸다. 주춧돌은 화강암 가공석으로 네모꼴이며 그 위에는 사각기둥을 올렸다. 기단은 다듬돌 바른층쌓기 세벌대 높이이며 장대석 마감을 하였다. 지붕은 합각이다. 사랑채는 4칸 전후퇴집으로 간살이는 북쪽에서부터 앞칸은 방이고 뒷칸은 헛간으로 되어 있고, 다음 2칸의 앞칸에는 크게 방을 두고 뒷칸에도 좌우로 방을 두었다. 맨 끝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으며 각 툇간에는 창고방이 시설되어 있다. 사랑채 전면에 햇볕을 막는 시설이 되어 있고 북쪽에는 누마루를 시설하였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 기둥에 창방을 돌리고 보아지를 끼웠으며 그 위에 주두를 놓았다. 도리의 모서리는 면으로 접고 장혀를 받쳤다. 보이는 곳만 원형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며 낮은 덤벙주춧돌을 놓았다.
- 수량
- 일곽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불가능
- 전화
- 061-86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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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반적인 옛날주택의 공간구성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다르고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주택의 배치와 평면구성에 있어서도 대가족제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려는 의식에 따라 거처하고 활동하는 공간이 따로 구분되었다.이 집은 한국 농촌의 전형적인 양반집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집은 전체적으로 동남향을하여 배치되었고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헛간과 곡간체가 있다.여인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인 안채는 '一'자형으로 앞.뒤에 툇간이 있으며, 좌측으로부터 작은방 1칸, 대청 2칸, 큰방 2칸이다. 주춧돌 위에는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단은 다듬은 돌을 바르게 쌓았다. 남자들의 생활공간인 사랑채는 '一'자형 5칸 겹집이며 낮은 기단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은 보이는 곳은 원형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집 앞의 솟을대문에는 건물을 지은 내력, 날짜와 시간 등을 적은 상량문(上樑文)이 남아 있어 1949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채나 사랑채는 시기가 훨씬 올라가 20세기초(1910년대)로 추정된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8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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