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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비 공식 관광정보


+2수열비는 수열평 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양사무의 부인 해주 오씨의 절개를 기리는 석비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해주오씨는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기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각 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 樹烈坪’이라 썼는데, 수열은 부인의 열녀(烈女)의 기상을 심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9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04.01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수열평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조선시대 중기의 오씨 부인이라는 여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오씨부인은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신의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각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樹烈坪)’이라 썼는데, 이 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 수량
- 1기
- 개장일
- 연중개방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전화
- 063-350-5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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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 장수군 · 관광지
수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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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09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04.01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수열평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조선시대 중기의 오씨 부인이라는 여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오씨부인은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신의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각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樹烈坪)’이라 썼는데, 이 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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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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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개방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전화
- 063-350-5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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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수열비는 수열평 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양사무의 부인 해주 오씨의 절개를 기리는 석비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해주오씨는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기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각 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 樹烈坪’이라 썼는데, 수열은 부인의 열녀(烈女)의 기상을 심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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