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Korea OpenAPI
충주 남산성 공식 관광정보
충주 남산성은 충주시 안림동과 목벌동 사이에 있는 산성으로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린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다. 성안에는 우물 자리가 두 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는다. 동서의 산 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 남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몽고군의 이어지는 침입에도 꿋꿋이 막아내어 끝내 지켜졌다고 전해진다.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했다는 설도 있다.
- ✓ 주차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9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0.01.09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 산56-1과 직동산 24-1 및 목벌동 산54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19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조선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를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 수량
- 1,16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충주시청 문화예술과 043-850-5985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충청북도 · 충주시 · 관광지
충주 남산성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9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0.01.09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 산56-1과 직동산 24-1 및 목벌동 산54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19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조선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를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 수량
- 1,16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충주시청 문화예술과 043-850-5985
VisitKorea OpenAPI
충주 남산성 공식 관광정보
충주 남산성은 충주시 안림동과 목벌동 사이에 있는 산성으로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린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다. 성안에는 우물 자리가 두 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는다. 동서의 산 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 남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몽고군의 이어지는 침입에도 꿋꿋이 막아내어 끝내 지켜졌다고 전해진다.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했다는 설도 있다.
- ✓ 주차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