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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공식 관광정보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년(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를 지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 일원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낙선재 뒤로는 후원을 만들었다. 건물과 후원 사이에는 작은 석축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화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했다.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7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단, 정기휴일이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과 겹칠 경우에는 개방하며, 그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이 정기휴일임
- 지정일
- 1963.01.18
- 시대
- 조선 태종 5년(1405)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창덕궁은 1405년(태종 5)에 창건한 조선왕조의 궁궐이다. 처음에는 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 법궁 외에 별도로 지은 궁궐)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역대 왕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소실되자 제일 먼저 1610년(광해군 2)에 중건되었고, 1867년(고종 4)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 불렀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 옥류천, 규장각, 주합루, 연경당, 낙선재 등의 건물이 조성되면서 창덕궁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게 되었다. 창덕궁은 크게 국왕의 즉위식 등 큰 행사를 치렀던 정전(인정전)과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돌보던 편전(선정전),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희정당, 대조전 등),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부용지, 애련지 등)으로 나누어진다. 후원은 자연경관을 살려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었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다르게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산세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물로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수량
- 556,062.4㎡
- 영업시간
- [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9월~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 주차
- 불가능
- 전화
- 02-3668-2300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서울특별시 · 종로구 · 관광지
창덕궁 낙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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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07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단, 정기휴일이 공휴일 및 대체공휴일과 겹칠 경우에는 개방하며, 그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이 정기휴일임
- 지정일
- 1963.01.18
- 시대
- 조선 태종 5년(1405)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창덕궁은 1405년(태종 5)에 창건한 조선왕조의 궁궐이다. 처음에는 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 법궁 외에 별도로 지은 궁궐)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역대 왕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소실되자 제일 먼저 1610년(광해군 2)에 중건되었고, 1867년(고종 4)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 불렀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 옥류천, 규장각, 주합루, 연경당, 낙선재 등의 건물이 조성되면서 창덕궁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게 되었다. 창덕궁은 크게 국왕의 즉위식 등 큰 행사를 치렀던 정전(인정전)과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돌보던 편전(선정전),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희정당, 대조전 등),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부용지, 애련지 등)으로 나누어진다. 후원은 자연경관을 살려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었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다르게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산세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물로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수량
- 556,062.4㎡
- 영업시간
- [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9월~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 주차
- 불가능
- 전화
- 02-366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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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공식 관광정보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년(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를 지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 일원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낙선재 뒤로는 후원을 만들었다. 건물과 후원 사이에는 작은 석축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화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했다.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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