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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서원 공식 관광정보


+3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간언 하다 죽음을 당한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1695년(숙종 21)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하였다.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1697년(숙종 23)에 숙종이 ‘노강’이라고 이름을 지어 새긴 현판을 내렸다. 이후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이후에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 민 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94년(숙종 20)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출처 : 의정부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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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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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07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77.10.1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노강서원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숙종 3년(1677) 장원급제한 뒤 부수찬, 지평, 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위 후 이세화(李世華), 오두인(吳斗寅)과 함께 이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는 도중 노량진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그의 학문과 충절이 높게 평가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열(文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노강서원은 숙종 21년(1695) 사육신 묘 서쪽 산기슭에 창건되었다. 2년 뒤, 조윤벽(趙潤璧) 등의 상소로 ‘鷺江(노강)’이란 이름을 받았으며,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지었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8년 지금 있는 수락산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 동재·서재, 고직사 등과 출입문이 있으며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당은 박태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서재는 온돌방으로 꾸며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기거하는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수량
- 일원
- 영업시간
- - 외부 : 상시 개방 - 내부 : 의정부시 문화예술과로 사전 연락 후 협의 필요
- 주차
- 가능
- 전화
- 문화예술과 031-828-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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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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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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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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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강서원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숙종 3년(1677) 장원급제한 뒤 부수찬, 지평, 암행어사 등을 역임하였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위 후 이세화(李世華), 오두인(吳斗寅)과 함께 이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는 도중 노량진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그의 학문과 충절이 높게 평가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열(文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노강서원은 숙종 21년(1695) 사육신 묘 서쪽 산기슭에 창건되었다. 2년 뒤, 조윤벽(趙潤璧) 등의 상소로 ‘鷺江(노강)’이란 이름을 받았으며,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지었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8년 지금 있는 수락산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 동재·서재, 고직사 등과 출입문이 있으며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당은 박태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서재는 온돌방으로 꾸며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기거하는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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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간언 하다 죽음을 당한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1695년(숙종 21)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하였다.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1697년(숙종 23)에 숙종이 ‘노강’이라고 이름을 지어 새긴 현판을 내렸다. 이후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이후에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 민 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94년(숙종 20)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출처 : 의정부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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