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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릉(인조·인열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식 관광정보
파주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1594~1636)의 능이다. 장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인조, 오른쪽에 인열왕후를 모셨다. 장릉은 1635년(인조 13) 인열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파주 운천리에 조성되었다. 이때 인조는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었고, 1649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인조의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이 풍수상 불길하고, 화재가 자주 일어나며 뱀의 피해가 잦자 1731년(영조 7)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능의 형식을 쌍릉에서 세종의 영릉(英陵)의 예에 따라 합장릉으로 바꾸었다. 현재 장릉 능침 석물은 옛 장릉의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
- 문화재 (자연)
- 1
- ✓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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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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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7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방하며, 그 다음 첫 번째 평일에 휴관
- 지정일
- 1970.05.26
- 시대
- 조선 영조 7년(1731)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1594~1636)의 능이다. 인조는 추존 원종의 첫째아들로 1623년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동안 이괄의 난(1624년)을 수습하였고,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의 시련을 겪었다. 또 총융청과 수어청을 새로 만들어 군사제도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인열왕후는 한준겸의 딸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며, 인조 사이에서 6남(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그 외 2남 조졸) 1녀(조졸)를 낳았다. 장릉은 처음 인열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파주 북운천리에 조성되었고, 이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뱀의 피해가 잦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장릉의 병풍석은 조선왕릉 중 처음으로 모란꽃과 연꽃문양을 새겼다. 장명등에도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 있는데 이는 17세기 석물문양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이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호, 석양, 장명등, 망주석 등을 세웠다. 합장릉의 형태로 혼유석은 2좌 배치하였다. 장릉의 석물은 옮기기 전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 수량
- 414,427㎡
- 영업시간
- [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9~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 주차
- 가능
- 유모차
- 불가
- 전화
- 031-945-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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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릉(인조·인열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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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07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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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05.26
- 시대
- 조선 영조 7년(1731)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1594~1636)의 능이다. 인조는 추존 원종의 첫째아들로 1623년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동안 이괄의 난(1624년)을 수습하였고,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의 시련을 겪었다. 또 총융청과 수어청을 새로 만들어 군사제도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인열왕후는 한준겸의 딸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며, 인조 사이에서 6남(소현세자, 효종, 인평대군, 용성대군, 그 외 2남 조졸) 1녀(조졸)를 낳았다. 장릉은 처음 인열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파주 북운천리에 조성되었고, 이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뱀의 피해가 잦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장릉의 병풍석은 조선왕릉 중 처음으로 모란꽃과 연꽃문양을 새겼다. 장명등에도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 있는데 이는 17세기 석물문양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이다. 능침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호, 석양, 장명등, 망주석 등을 세웠다. 합장릉의 형태로 혼유석은 2좌 배치하였다. 장릉의 석물은 옮기기 전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 수량
- 414,427㎡
- 영업시간
- [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9~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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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
- 전화
- 031-945-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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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1594~1636)의 능이다. 장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인조, 오른쪽에 인열왕후를 모셨다. 장릉은 1635년(인조 13) 인열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파주 운천리에 조성되었다. 이때 인조는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었고, 1649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인조의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이 풍수상 불길하고, 화재가 자주 일어나며 뱀의 피해가 잦자 1731년(영조 7)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능의 형식을 쌍릉에서 세종의 영릉(英陵)의 예에 따라 합장릉으로 바꾸었다. 현재 장릉 능침 석물은 옛 장릉의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
- 문화재 (자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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