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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선생유허비 공식 관광정보


+6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인 박팽년(1417∼1456)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박팽년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과거에 두 번이나 급제하여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때에는 신숙주·성삼문·유성원 등과 함께 집현전의 학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펴다 실패로 끝나고,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치었다. 이후 그의 높은 절의를 기리어 ‘충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선생이 계시던 옛 건물터의 주춧돌들을 모아 세운 것으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현종 9년(1668)에 세웠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글에,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겼다. 현종 13년(1672) 비각을 세우고 ‘장절정(壯節亭)’이라 이름하여 비를 보호하고 있다. ( 출처 : 국가유산청)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0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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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6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9.03.18
- 시대
- 15세기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이 살던 곳이다. 박팽년은 세종 16년(1434)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단종 복위 운동을 꾸미다 세조 2년(1456)에 처형되었다. 죽은 후에 유림의 학자들이 선생의 집터가 없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현종 9년(1668)에 주춧돌을 모아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써서 비문을 세웠다. 현종 13년(1672)에는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이라 하였다.
- 수량
- 1,720㎡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2-251-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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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선생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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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일
- 198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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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이 살던 곳이다. 박팽년은 세종 16년(1434)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단종 복위 운동을 꾸미다 세조 2년(1456)에 처형되었다. 죽은 후에 유림의 학자들이 선생의 집터가 없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현종 9년(1668)에 주춧돌을 모아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써서 비문을 세웠다. 현종 13년(1672)에는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이라 하였다.
- 수량
-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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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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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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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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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인 박팽년(1417∼1456)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박팽년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과거에 두 번이나 급제하여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때에는 신숙주·성삼문·유성원 등과 함께 집현전의 학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펴다 실패로 끝나고,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치었다. 이후 그의 높은 절의를 기리어 ‘충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선생이 계시던 옛 건물터의 주춧돌들을 모아 세운 것으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현종 9년(1668)에 세웠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글에,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겼다. 현종 13년(1672) 비각을 세우고 ‘장절정(壯節亭)’이라 이름하여 비를 보호하고 있다. (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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