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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숭절사 공식 관광정보
창계숭절사는 조선 초기 세조 때 단종 복위를 시도한 취금헌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의 처형 소식을 듣고 자결한 청재 박심문(1408~1456)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 하는 곳이다. 창계숭절사는 1923년에 세운 사당으로, 숭고한 절의를 기리는 사당이라 하여 숭절사라 이름하였다. 1923년에 박심문의 후손들이 지역 사림들의 여론을 모아 세웠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의 기와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후 1989년 3월 18일에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전광역시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는 뿌리공원, 대전오월드, 보문산 등이 있다.
- ✓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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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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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6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9.03.18
- 시대
- 1923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창계숭절사는 1923년 세운 사당으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박심문(1408∼1456)을 모신 곳이다. 박팽년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34년(세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1455(세조 1)에는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는 중 발각되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심문 역시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36년(세종 18)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함길도 절도사인 김종서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큰 공을 세웠으며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성삼문 등 사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1871년(고종 8)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 구역은 사당(崇節祠:숭절사)과 강당(尙義堂:상의당), 동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사당인 숭절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획한 후 정면 1칸 통을 개방하여 전퇴(前退)를 만들었으며, 그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두 분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여 제향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이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2-606-6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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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숭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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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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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창계숭절사는 1923년 세운 사당으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박심문(1408∼1456)을 모신 곳이다. 박팽년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34년(세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1455(세조 1)에는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는 중 발각되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심문 역시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36년(세종 18)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함길도 절도사인 김종서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큰 공을 세웠으며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성삼문 등 사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1871년(고종 8)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 구역은 사당(崇節祠:숭절사)과 강당(尙義堂:상의당), 동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사당인 숭절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획한 후 정면 1칸 통을 개방하여 전퇴(前退)를 만들었으며, 그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두 분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여 제향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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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숭절사는 조선 초기 세조 때 단종 복위를 시도한 취금헌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의 처형 소식을 듣고 자결한 청재 박심문(1408~1456)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 하는 곳이다. 창계숭절사는 1923년에 세운 사당으로, 숭고한 절의를 기리는 사당이라 하여 숭절사라 이름하였다. 1923년에 박심문의 후손들이 지역 사림들의 여론을 모아 세웠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의 기와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후 1989년 3월 18일에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전광역시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인근에는 뿌리공원, 대전오월드, 보문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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