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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 공식 관광정보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모덕사 현판의 글자는 고종황제가 내린 글 가운데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 라는 구절에서 모(慕)자와 덕(德)자를 취한 것이다. 최익현 선생은 이항노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85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사헌부 장령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조약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이 살았던 고택과 장서각,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2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6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4.05.17
- 시대
- 1914년 면암 최익현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건립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최익현(1833∼1906)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익현은 이학로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에 살았던 고택에 마련된 사당으로 많은 장서를 보존하고 있는 장서각과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모덕사 관리사무소 041-940-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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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통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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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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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최익현(1833∼1906)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익현은 이학로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이곳 모덕사는 선생에 살았던 고택에 마련된 사당으로 많은 장서를 보존하고 있는 장서각과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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