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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선생묘 공식 관광정보


+2조선 태종대의 문신인 심온(1375~1418) 선생의 묘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원효安孝이다. 세종의 국구 (왕비의 아버지) 로 청천 부원군에 봉해지고 관직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1418년(세종 1)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발생한 무술옥사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후 무고로 판명되어 1451년(문종 1)에 복관되었다. 묘역은 계체석(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을 중심으로 3단의 계단식으로 조성하였는데, 15세기 묘제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봉분 앞 방부규수 양식의 묘표는 ‘안효’라는 시호가 적혀 있어 1451년 이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비문은 당대에 유행하던 송설체의 글씨로 강건하면서도 유려하다. 이 글씨는 『근역서화징』(1928)의 기록을 통해 송설체의 대가인 안평대군(1418~1453)의 필적으로 추정된다. 장명등은 3단의 원수 형태가 부자연스러우나, 화창이 크고 시원한 조형을 지닌 15세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문석인은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로 규모가 장대하고 인상이 강렬하여 무덤 수호의 상징성을 잘 표현하였다. 조선 초기 묘제의 원형이 잘 남아있으며, 송설체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묘표와 15세기의 예술성을 담고 있는 석물들은 모두 경기지역 능묘 문화의 고유성까지 담아내고 있어 가치 높은 문화유산으로 인정된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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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79.09.10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세종의 국구(國舅 : 왕비의 아버지)이자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沈溫, 1375~1418) 선생의 묘이다. 묘역은 순흥 안씨(順興安氏)와 합장한 단분(單墳; 하나의 봉분)의 형태이다. 계체석(階砌石; 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을 중심으로 3단의 계단식으로 조성하였는데, 15세기 묘제의 원형이 잘 보관되고 있다.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는 ‘안효’라는 시호가 적혀 있어 1451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형태는 규수방부형(圭首方趺形 ; 좌우 모서리의 각을 죽인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비교적 장대한 규모이다. 비문은 당대에 유행하던 송설체(松雪體 : 원의 서화가인 조맹부의 글씨체로 굳세고 기품이 있는 해서체)의 글씨인데, 강건하면서도 유려하다. 이 글씨는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1928년)에 의하면 송설체의 대가인 안평대군(1418~1453)의 필적이라 한다. 장명등은 3단의 원수(圓首)형태가 부자연스러우나, 화창(火窓)이 크고, 시원한 조형을 지닌 15세기의 작품이다. 문석인은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으로 규모가 장대하고 인상이 강렬하여 무덤 수호의 상징성을 잘 표현하였다. 조선 초기 묘제의 원형이 잘 남아 있으며, 송설체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묘표와 15세기의 예술성을 담고 있는 석물들은 모두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고유성까지 담아내고 있어 가치 높은 국가유산이다.
- 수량
- 1기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불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수원시 문화예술과 031-228-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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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 수원시 · 관광지
심온선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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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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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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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소개
- 세종의 국구(國舅 : 왕비의 아버지)이자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沈溫, 1375~1418) 선생의 묘이다. 묘역은 순흥 안씨(順興安氏)와 합장한 단분(單墳; 하나의 봉분)의 형태이다. 계체석(階砌石; 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을 중심으로 3단의 계단식으로 조성하였는데, 15세기 묘제의 원형이 잘 보관되고 있다.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는 ‘안효’라는 시호가 적혀 있어 1451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형태는 규수방부형(圭首方趺形 ; 좌우 모서리의 각을 죽인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비교적 장대한 규모이다. 비문은 당대에 유행하던 송설체(松雪體 : 원의 서화가인 조맹부의 글씨체로 굳세고 기품이 있는 해서체)의 글씨인데, 강건하면서도 유려하다. 이 글씨는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1928년)에 의하면 송설체의 대가인 안평대군(1418~1453)의 필적이라 한다. 장명등은 3단의 원수(圓首)형태가 부자연스러우나, 화창(火窓)이 크고, 시원한 조형을 지닌 15세기의 작품이다. 문석인은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으로 규모가 장대하고 인상이 강렬하여 무덤 수호의 상징성을 잘 표현하였다. 조선 초기 묘제의 원형이 잘 남아 있으며, 송설체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묘표와 15세기의 예술성을 담고 있는 석물들은 모두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고유성까지 담아내고 있어 가치 높은 국가유산이다.
- 수량
-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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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 수원시 문화예술과 031-228-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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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 태종대의 문신인 심온(1375~1418) 선생의 묘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원효安孝이다. 세종의 국구 (왕비의 아버지) 로 청천 부원군에 봉해지고 관직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1418년(세종 1)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발생한 무술옥사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귀국 도중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후 무고로 판명되어 1451년(문종 1)에 복관되었다. 묘역은 계체석(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을 중심으로 3단의 계단식으로 조성하였는데, 15세기 묘제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봉분 앞 방부규수 양식의 묘표는 ‘안효’라는 시호가 적혀 있어 1451년 이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비문은 당대에 유행하던 송설체의 글씨로 강건하면서도 유려하다. 이 글씨는 『근역서화징』(1928)의 기록을 통해 송설체의 대가인 안평대군(1418~1453)의 필적으로 추정된다. 장명등은 3단의 원수 형태가 부자연스러우나, 화창이 크고 시원한 조형을 지닌 15세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문석인은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로 규모가 장대하고 인상이 강렬하여 무덤 수호의 상징성을 잘 표현하였다. 조선 초기 묘제의 원형이 잘 남아있으며, 송설체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묘표와 15세기의 예술성을 담고 있는 석물들은 모두 경기지역 능묘 문화의 고유성까지 담아내고 있어 가치 높은 문화유산으로 인정된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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