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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대농리석불입상 공식 관광정보


+3고려시대에 유행한 불상 양식의 석불입상이다. 대농리 석불입상은 마을 소나무 숲 옆으로 소나무 몇 그루와 함께 도로 한편에 조용히 서 있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는 원나라 귀족들이 쓰던 모자였으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의 관리와 승려들이 착용 원 정모 형식의 갓이 얹혀 있다. 양감이 없는 얼굴에는 가로로 긴 눈과 도톰한 코, 다물고 있는 작은 입이 표현되었고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양어깨를 덮고 내려오는 법의는 양쪽 팔뚝에서 굵은 띠 모양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왼손으로 이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법의 아래 드러난 왼손에는 팔찌를 하고 있어, 여래상이 아닌 보살상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정병은 여래상이 아니라 보살상의 지물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양감이 드러나지 않는 밋밋한 표현,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이목구비의 표현, 머리에 쓴 갓, 한 손에 들고 있는 정병의 표현 등이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과 매우 유사한 표현 기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표현은 특히 고려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주며 양감 없는 얼굴과 신체, 가로로 긴 눈과 두툼한 코, 일자로 다문 입, 크기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두 팔과 손의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 불상의 지방 양식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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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3.09.19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고려 시대에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주는 석불입상이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는 원정모(圓頂帽 ; 챙이 둥글고 정상부가 봉긋한 형태의 모자로, 원나라 귀족들이 쓰던 모자였으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의 관리와 승려들이 착용) 형식의 갓이 얹혀 있다. 양감이 없는 얼굴에는 가로로 긴 눈과 도톰한 코, 다물고 있는 작은 입이 표현되었고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양 어깨를 덮고 내려오는 법의는 양쪽 팔뚝에서 굵은 띠 모양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왼손으로 이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법의 아래 드러난 왼손에는 팔찌를 하고 있어, 여래상이 아닌 보살상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정병은 여래상이 아니라 보살상의 지물(持物 ; 불교 존상들이 손에 들고 있는 상징적인 물건)로 이용되는 기물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양감이 드러나지 않는 밋밋한 표현,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이목구비의 표현, 머리에 쓴 갓, 한 손에 들고 있는 정병의 표현 등이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과 매우 유사한 표현 기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표현은 특히 고려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주며 양감 없는 얼굴과 신체, 가로로 긴 눈과 두툼한 코, 일자로 다문 입, 크기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두 팔과 손의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 불상의 지방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수량
- 1구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안성시 관광지원센터 031-677-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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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대농리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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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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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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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소개
-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고려 시대에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주는 석불입상이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는 원정모(圓頂帽 ; 챙이 둥글고 정상부가 봉긋한 형태의 모자로, 원나라 귀족들이 쓰던 모자였으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의 관리와 승려들이 착용) 형식의 갓이 얹혀 있다. 양감이 없는 얼굴에는 가로로 긴 눈과 도톰한 코, 다물고 있는 작은 입이 표현되었고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양 어깨를 덮고 내려오는 법의는 양쪽 팔뚝에서 굵은 띠 모양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왼손으로 이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법의 아래 드러난 왼손에는 팔찌를 하고 있어, 여래상이 아닌 보살상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정병은 여래상이 아니라 보살상의 지물(持物 ; 불교 존상들이 손에 들고 있는 상징적인 물건)로 이용되는 기물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양감이 드러나지 않는 밋밋한 표현,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이목구비의 표현, 머리에 쓴 갓, 한 손에 들고 있는 정병의 표현 등이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과 매우 유사한 표현 기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표현은 특히 고려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주며 양감 없는 얼굴과 신체, 가로로 긴 눈과 두툼한 코, 일자로 다문 입, 크기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두 팔과 손의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 불상의 지방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수량
- 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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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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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려시대에 유행한 불상 양식의 석불입상이다. 대농리 석불입상은 마을 소나무 숲 옆으로 소나무 몇 그루와 함께 도로 한편에 조용히 서 있다. 신체에 비해 큰 머리에는 원나라 귀족들이 쓰던 모자였으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의 관리와 승려들이 착용 원 정모 형식의 갓이 얹혀 있다. 양감이 없는 얼굴에는 가로로 긴 눈과 도톰한 코, 다물고 있는 작은 입이 표현되었고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양어깨를 덮고 내려오는 법의는 양쪽 팔뚝에서 굵은 띠 모양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왼손으로 이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법의 아래 드러난 왼손에는 팔찌를 하고 있어, 여래상이 아닌 보살상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정병은 여래상이 아니라 보살상의 지물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양감이 드러나지 않는 밋밋한 표현,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이목구비의 표현, 머리에 쓴 갓, 한 손에 들고 있는 정병의 표현 등이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과 매우 유사한 표현 기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표현은 특히 고려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보여주며 양감 없는 얼굴과 신체, 가로로 긴 눈과 두툼한 코, 일자로 다문 입, 크기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두 팔과 손의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 불상의 지방 양식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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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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