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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서원 공식 관광정보
이선제·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 5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필문 이선제(생몰년 미상)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조참판과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실록」편찬과 「고려사」의 내용 중 사실과 다른 점을 고쳐서 편찬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은 모두 이선제의 자손으로 여러 벼슬을 하였던 분들이다. 인조 2년(1624)에 세운 이 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어 1901년에 임시로 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오다가 1919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출입문인 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은 이선제를 중심으로 좌우에 4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교육 장소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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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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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79.08.0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이선제·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 5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필문 이선제(생몰년 미상)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조참판과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실록』편찬과 『고려사』의 내용 중 사실과 다른 점을 고쳐서 편찬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은 모두 이선제의 자손으로 여러 벼슬을 하였던 분들이다. 인조 2년(1624)에 세운 이 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어 1901년에 임시로 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오다가 1919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출입문인 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은 이선제를 중심으로 좌우에 4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교육 장소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다.
- 수량
- 일원
- 영업시간
- 09:00~18:00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61-432-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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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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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 지정일
- 1979.08.0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이선제·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 5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필문 이선제(생몰년 미상)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조참판과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실록』편찬과 『고려사』의 내용 중 사실과 다른 점을 고쳐서 편찬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은 모두 이선제의 자손으로 여러 벼슬을 하였던 분들이다. 인조 2년(1624)에 세운 이 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어 1901년에 임시로 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오다가 1919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출입문인 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은 이선제를 중심으로 좌우에 4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교육 장소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다.
- 수량
-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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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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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제·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 5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필문 이선제(생몰년 미상)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조참판과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세종실록」편찬과 「고려사」의 내용 중 사실과 다른 점을 고쳐서 편찬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조원·이중호·이발·이길 등은 모두 이선제의 자손으로 여러 벼슬을 하였던 분들이다. 인조 2년(1624)에 세운 이 서원은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어 1901년에 임시로 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오다가 1919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출입문인 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은 이선제를 중심으로 좌우에 4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교육 장소와 유림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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