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Korea OpenAPI
홍주향교 공식 관광정보


+3홍주향교는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확인되지는 않아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홍주향교의 보수내역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인 가능하다. 1871년(고종 8년)에 향교의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80년에는 동서무와 중삼문이 신설되었다. 1893년에는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14년에는 대성전과 후원이 수선되었으며, 1924년에는 문묘 전부가 보수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8년, 1972년, 1995년에 중개수가 있었다. 향교의 건물은 낮은 구릉지에 앞에 명륜당을, 뒤에는 대성전을 정남향으로 배치한 전학후묘식 형식을 따르고 있다. 명륜당 전면 좌우에 있던 동재, 서재는 일제 때 훼철되었고, 전사청만 남아있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인데 전면 1칸은 툇칸으로 개방하였으며, 경내에는 동무, 서무, 제기고 등이 남아있다. 특히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어둠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 유교 건축의 석물이 남아있다. 에 의하면 홍주향교에는 조선전기에 종6품의 교수가 파견되었고, 조선중기에 제독관제도가 실시될 때에는 6품의 문관으로 제독관이 파견되었다 한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97.12.2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홍주향교를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말에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태종 8년(1408)과 태종 18년(1418)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뒤 몇 차례의 소실로 1924년에 크게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 이외에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전사청·제기고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또한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불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의 석물이 남아 있는데, 이는 유교에서 예를 올릴 때 사용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수량
- 4,19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1-632-2306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붐빔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 우유농가연관 1위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충청남도 · 홍성군 · 관광지
홍주향교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97.12.2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홍주향교를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말에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태종 8년(1408)과 태종 18년(1418)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뒤 몇 차례의 소실로 1924년에 크게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 이외에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전사청·제기고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또한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불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의 석물이 남아 있는데, 이는 유교에서 예를 올릴 때 사용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수량
- 4,19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1-632-2306
VisitKorea OpenAPI
홍주향교 공식 관광정보


+3홍주향교는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확인되지는 않아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홍주향교의 보수내역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인 가능하다. 1871년(고종 8년)에 향교의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80년에는 동서무와 중삼문이 신설되었다. 1893년에는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14년에는 대성전과 후원이 수선되었으며, 1924년에는 문묘 전부가 보수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8년, 1972년, 1995년에 중개수가 있었다. 향교의 건물은 낮은 구릉지에 앞에 명륜당을, 뒤에는 대성전을 정남향으로 배치한 전학후묘식 형식을 따르고 있다. 명륜당 전면 좌우에 있던 동재, 서재는 일제 때 훼철되었고, 전사청만 남아있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인데 전면 1칸은 툇칸으로 개방하였으며, 경내에는 동무, 서무, 제기고 등이 남아있다. 특히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어둠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 유교 건축의 석물이 남아있다. 에 의하면 홍주향교에는 조선전기에 종6품의 교수가 파견되었고, 조선중기에 제독관제도가 실시될 때에는 6품의 문관으로 제독관이 파견되었다 한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붐빔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 우유농가연관 1위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