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각서석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36.2854, 126.8929

VisitKorea OpenAPI

부산각서석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10 · VisitKorea
부여_부산각서석 (2)
ⓒ한국관광공사 공식사진 · 5장
부여_부산각서석 (3)
부여_부산각서석 (4)+2

각서석은 바위에 글씨를 새긴 것을 말한다. 부산각서석은 부여 백마강 서쪽 기슭에 솟은 산인 부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각서석으로 산을 깎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 대재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백마강 너머로는 부여 시가지와 부소산성 등이 보인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백강 이경여(1585~1657)가 효종에게 청나라를 공격하여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자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것에 대해 효종이 그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답한 것이 그 기원이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효종의 답변서 중에서 ‘지통재신’, ‘일모도원’ 8자를 골라 이경여의 아들 이민서에게 전한 것을 1700년(숙종 26)에 손자 이명이 바위에 새긴 것이 각서석이다. 그리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왕의 말씀이 크다는 뜻으로 ‘대재각’이라 하였다. 1976년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는 부산서원이 있으며, 주변에는 백마강, 부소산성 외에 수북정, 부풍사 등이 있다.

  • ✓ 주차

관광정보: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OpenAPI

이 화면의 구성은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추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부산각서석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연중무휴
신용카드
없음
지정일
1976.01.08
지정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유산 소개
부여군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 ) 선생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쓴 것이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내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 8년(1657)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답장을 내렸는데, 청나라에서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간섭하여, 결국 그는 부여로 낙향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이 이 내용을 여덟 자로 써서 후손에게 전하였고, 숙종 26년(1700) 그의 손자 이명이 그 글을 바위에 새긴 후, 바위 위에 건물을 세워 ‘대재각(大哉閣)’이라 하였다. 글씨의 필체가 힘차고 강건하여 금석문의 자료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며, 당시 벼슬을 그만두고 초야에 내려와서도 북벌계획을 왕과 협의하고 토론하던 늙은 재상의 굳은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수량
1기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가능
유모차
없음
전화
041-830-2523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