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김씨삼강정문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고삼호수로 141-3037.0874, 127.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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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김씨삼강정문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10 · VisitKorea
경기_안성_서흥김씨삼강정문 (2)
ⓒ한국관광공사 공식사진 ·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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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김씨삼강정문은 조선시대 충신 김충수와 그의 아들 김함의 효행, 그리고 후손의 열 부인 온양 정 씨, 청주 한 씨의 행적을 기록한 정문(旌門)이다. 한 가문에서 충신과 효자 각 1명, 정절 2명이 나왔고, 『삼강행실속록』에 기록됐다. 김충수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죽산에서 왜군과 접전하다가 적에게 붙잡히자 같이 싸우던 아들 김함이 부친을 구하고자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부자가 동시에 순절했다. 선조 39년(1606) 년 김함의 효를 기려 효자 정문을 내렸고, 숙종 26년(1700)에는 김충수의 충정을 기려 충신 정문을 내렸다. 또, 병자호란에 적을 피해 투신하여 정절을 지킨 김함의 손녀며느리 온양 정 씨와 부군이 중병을 앓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고 부군을 따라 순절한 6대손며느리 청주 한 씨를 영조 16년(1740)과 영조 13년(1737)에 열부로 명정하고 정렬 정문을 내렸다. 이 정문들은 원래 각각 다른 곳에 세워졌으나 1958년 고삼저수지 관개공사로 인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됐으며, 정문과 현판들을 한 군데 모아 보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채 주변에는 담장을 두르고 앞에 일각문을 두었으며, 본채는 앞면 4칸·옆면 1칸으로 지붕 선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집인데 앞면에만 홍살이 있다. 잘 정돈된 잔디와 나무들 가운데 담장으로 둘러쳐져 아담하게 놓인 모습이 충절과 효심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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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정보: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Open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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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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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김씨삼강정문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연중무휴
신용카드
없음
지정일
1984.09.12
지정 종목
시도기념물
유산 소개
서흥 김씨 가문에서 배출된 충신과 효자 및 열부(烈婦; 절개가 굳은 여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려준 정문(旌閭; 효자·충신·열녀 등에게 상으로 주는 문)이다. 나라에서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의병장이었던 김충수(金忠守)가 왜군과 싸우다 잡히고 그의 아들인 김함(金涵)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적진에 갔다가 아버지와 함께 죽자 1606년 김함의 효행을 기려 효자정문을, 1700년 김충수의 충성을 기려 충신정문을 각각 내려주었다. 그리고 김함의 손자며느리인 온양 정씨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적군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두 딸과 함께 자살하였다. 또한 청주한씨는 1731년 남편이 죽자, 자식이 없는 것이 아내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 여겨 남편을 따라 죽었다. 이에 1740년에 나라에서 두 여성의 행적을 기려 열부정문을 내려주었다. 삼강정문은 현재 본채와 일각문을 중심으로 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일각문 밖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본채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규모를 가진 팔작지붕 건물로 네 사람의 정문 현판[충신정문, 효자정문, 열부정문, 열부정문]이 각각 걸려있다.
수량
1동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가능
유모차
없음
전화
031-677-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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