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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선생묘 공식 관광정보
이지함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토정비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지함 선생 묘는 보령시 북서부 서해안에 있는 묘소이다. 낮은 산허리에 있으면서도 보령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지함 생전에 미리 터를 정해두었다고도 전해진다. 전체적으로는 이지함의 형제와 가족이 함께 있는 가족묘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이지함의 묘는 봉분 둘레 10m, 높이 1.6m로 묘소에는 비석과 문석인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진 비석은 직사각형의 대좌와 비신이 있다.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2㎝, 두께 17.8㎝이며, 전면에는 ‘토정선생이공지묘 공인완산이씨부좌’라고 새겨져 있다. 유언대로 비문은 간략하고 문석인은 치장이 거의 없이 매우 검소하다. 1992년 5월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지함 선생 묘는 국도 40호선에서 지방도 610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보령에너지월드, 갈매못 순교성지 등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92.08.17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지번(之蕃)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음. ◦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벼슬하기 전 한때 마포강변의 흙집 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土亭)이라 하였고, 어염상고(魚鹽商賈)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음. ◦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 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으며,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데 힘쓰다가 1598년 재임 중 순직하였음. ◦ 그리하여 우리나라 실학(實學)의 효시(嚆示)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1686년(숙종12) 보령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주벽(主壁)으로 배향(配享)되었고, 1761년(영조37)에 문강공(文康公)의 시호(諡號)를 받았음. ◦ 고만(高巒)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그의 형제와 존․비속의 14기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인하여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임.
- 수량
- 1기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소형 10대)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41-930-6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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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 보령시 · 관광지
이지함선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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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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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 지정일
- 1992.08.17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 이지함(李之菡)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토정(土亭)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지번(之蕃)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음. ◦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벼슬하기 전 한때 마포강변의 흙집 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土亭)이라 하였고, 어염상고(魚鹽商賈)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음. ◦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 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으며,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데 힘쓰다가 1598년 재임 중 순직하였음. ◦ 그리하여 우리나라 실학(實學)의 효시(嚆示)로 알려지기도 하는데, 1686년(숙종12) 보령 화암서원(花巖書院)에 주벽(主壁)으로 배향(配享)되었고, 1761년(영조37)에 문강공(文康公)의 시호(諡號)를 받았음. ◦ 고만(高巒)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그의 형제와 존․비속의 14기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인하여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임.
- 수량
- 1기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소형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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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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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토정비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지함 선생 묘는 보령시 북서부 서해안에 있는 묘소이다. 낮은 산허리에 있으면서도 보령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지함 생전에 미리 터를 정해두었다고도 전해진다. 전체적으로는 이지함의 형제와 가족이 함께 있는 가족묘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이지함의 묘는 봉분 둘레 10m, 높이 1.6m로 묘소에는 비석과 문석인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진 비석은 직사각형의 대좌와 비신이 있다.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2㎝, 두께 17.8㎝이며, 전면에는 ‘토정선생이공지묘 공인완산이씨부좌’라고 새겨져 있다. 유언대로 비문은 간략하고 문석인은 치장이 거의 없이 매우 검소하다. 1992년 5월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지함 선생 묘는 국도 40호선에서 지방도 610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보령에너지월드, 갈매못 순교성지 등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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