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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사(해남) 공식 관광정보
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사동마을의 운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 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730년 무렵 목관 강필경이 부임해 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가량인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은 1779년(정조 3)에 복원된 건물로 1870년 의윤, 정기, 진일 등 3인의 스님이 발원하여 중수하였으며, 최근 년에는 정랑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요사채, 칠성각, 천불전, 화장실 등을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 종각, 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절에는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서동사 목조삼존불 좌상 보물 1715호와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이 있다.
- ✓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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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90.02.24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서동사는 운차산 기슭에 있는 절로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6)대에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화를 면하였다고 하여 당시에는 갈천사로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다.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고쳐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창호는 가운데 칸에는 4짝 빗살문을, 양쪽 끝칸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건물 안쪽은 통칸으로 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뒤편으로 삼존불을 모셨으며, 불단 위에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달아 놓았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해남군 문화유산팀 061-530-5250 해남군 관광안내 061-532-1330 / 061-530-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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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사(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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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사는 운차산 기슭에 있는 절로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6)대에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화를 면하였다고 하여 당시에는 갈천사로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다.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고쳐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창호는 가운데 칸에는 4짝 빗살문을, 양쪽 끝칸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건물 안쪽은 통칸으로 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뒤편으로 삼존불을 모셨으며, 불단 위에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달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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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사동마을의 운거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 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1730년 무렵 목관 강필경이 부임해 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가량인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은 1779년(정조 3)에 복원된 건물로 1870년 의윤, 정기, 진일 등 3인의 스님이 발원하여 중수하였으며, 최근 년에는 정랑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요사채, 칠성각, 천불전, 화장실 등을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 종각, 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절에는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서동사 목조삼존불 좌상 보물 1715호와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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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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