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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 공식 관광정보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의 옛 이름이 사물(史勿), 사수(泗水), 동성(東城) 등이었는데 조선 태종 때부터 사천이라 하였다.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 시작하여 3년 후(1445)에 완성시켰다.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94.09.26
- 시대
- ~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군지』에 의하면 사천은 조선 태종 때 ‘동성’이라 불렀으며, 그때 진을 두고 병마사로서 별현사를 겸직시켰고 세종 때에 다시 사천현감으로 불렀다. 이 성은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있다.
- 수량
- 4,39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55-831-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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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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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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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 지정일
- 1994.09.26
- 시대
- ~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군지』에 의하면 사천은 조선 태종 때 ‘동성’이라 불렀으며, 그때 진을 두고 병마사로서 별현사를 겸직시켰고 세종 때에 다시 사천현감으로 불렀다. 이 성은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있다.
- 수량
- 4,395㎡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55-831-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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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의 옛 이름이 사물(史勿), 사수(泗水), 동성(東城) 등이었는데 조선 태종 때부터 사천이라 하였다.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 시작하여 3년 후(1445)에 완성시켰다.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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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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