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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서원(순천) 공식 관광정보
순천은 조선시대에는 임금님의 눈 밖에 난 학자들의 유배지였다. 옥천서원은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 때 김종직 일파로 연루된 환훤당 김굉필이 평안도 회천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에 이배되어 죽자, 그 학덕을 기려 명종 19년(1564) 부사 이정이 처음 창건하여 경현당이라 하였다. 명종 20년(1565) 김굉필의 신위를 모실 사당을 지으면서 옥천정사라 하다가 선조 1년(1568) 순천부사 김계의 상소에 의하여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그 뒤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8년 유림들이 복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굉필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어려서부터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웠고 형조좌랑을 지냈다. 무호사화 때 김종직 일파로 몰려 희천·순천에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 때 죽었다. 조선조 왕현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며 사후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고종 5년 9월 대원군이 전국 미사액 서원을 모두 철폐하였으나 이사주 만큼은 당시 전국 47개 사적 서원중의 하나로 훼철되지 않고 도봉서원에 봉존했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4칸의 경현당(景賢堂), 4칸의 지도재(志道齋), 4칸의 의인재(依仁齋), 1칸의 전사청(典祀廳),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4칸의 고직사(雇直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김굉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서원의 강당인 경현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지도재와 의인재는 각각 동재9(東齋)와 서재(西齋)로서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며, 전사청은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 마련하여두는 곳이다. 순천향교와 직선거리로 240m 떨어져 있으며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어,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진풍경을 이룬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4.02.29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조선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 때 희생된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김굉필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어려서부터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후에 조선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불렸으며, 죽은 뒤에는 우의정의 직함을 받기도 하였다. 명종 19년(1564)에 부사 이정이 처음 세웠고, 선조 1년(1568)에 순천부사 김계의 상소로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한때 화재로 불탄 것을 1928년 유림들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건물 배치는 경현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집의당, 내삼문 그리고 사당인 옥천사가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앞면에 툇마루를 깔아 개방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가운데는 대청마루을 깔고 양쪽 문에는 온돌방을 놓았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 수량
- 일곽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61-749-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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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 순천시 · 관광지
옥천서원(순천)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4.02.29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조선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 때 희생된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김굉필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어려서부터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후에 조선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불렸으며, 죽은 뒤에는 우의정의 직함을 받기도 하였다. 명종 19년(1564)에 부사 이정이 처음 세웠고, 선조 1년(1568)에 순천부사 김계의 상소로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한때 화재로 불탄 것을 1928년 유림들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건물 배치는 경현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집의당, 내삼문 그리고 사당인 옥천사가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이며 앞면에 툇마루를 깔아 개방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가운데는 대청마루을 깔고 양쪽 문에는 온돌방을 놓았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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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곽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61-749-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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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서원(순천) 공식 관광정보
순천은 조선시대에는 임금님의 눈 밖에 난 학자들의 유배지였다. 옥천서원은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 때 김종직 일파로 연루된 환훤당 김굉필이 평안도 회천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에 이배되어 죽자, 그 학덕을 기려 명종 19년(1564) 부사 이정이 처음 창건하여 경현당이라 하였다. 명종 20년(1565) 김굉필의 신위를 모실 사당을 지으면서 옥천정사라 하다가 선조 1년(1568) 순천부사 김계의 상소에 의하여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그 뒤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8년 유림들이 복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굉필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어려서부터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웠고 형조좌랑을 지냈다. 무호사화 때 김종직 일파로 몰려 희천·순천에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 때 죽었다. 조선조 왕현의 한 사람으로 불리우며 사후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고종 5년 9월 대원군이 전국 미사액 서원을 모두 철폐하였으나 이사주 만큼은 당시 전국 47개 사적 서원중의 하나로 훼철되지 않고 도봉서원에 봉존했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4칸의 경현당(景賢堂), 4칸의 지도재(志道齋), 4칸의 의인재(依仁齋), 1칸의 전사청(典祀廳),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4칸의 고직사(雇直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김굉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서원의 강당인 경현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지도재와 의인재는 각각 동재9(東齋)와 서재(西齋)로서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며, 전사청은 향례(享禮) 때 제수(祭需) 마련하여두는 곳이다. 순천향교와 직선거리로 240m 떨어져 있으며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어,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진풍경을 이룬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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