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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사(남원) 공식 관광정보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 체험 가이드
- 템플스테이(체험형 / 휴식형)
- 체험 연령
- 중고등생 이상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신용카드
- 없음
- 지정일
- 1985.08.16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에 현오국사가 지은 사찰로 원래 만행사라 불렀던 것을 후에 귀정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사찰이름을 바꾼 유래에 대하여는 백제의 왕이 3일간 승려의 설법을 들으며 귀정사에서 국정을 살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고려 목종 5년(1002)과 세조 14년(1468) 두 차례에 걸쳐 크게 고쳐지었는데, 이때가 귀정사의 전성시대였다. 그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파손된 것을 현종 5년(1664)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모습대로 고쳐 짓고, 순조 4년(1804)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공비토벌 작전상의 이유로 유엔군이 모두 불태워 버렸다. 기록에 의하면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상실, 명월당이 있었으며, 부속암자로는 남암, 대은암, 영당, 낙은암이 있었다 하나 모두 소실되고, 현재는 유정동 스님의 노력으로 대웅전, 승당, 산신각, 요사만을 새로 짓고, 1968년에 마무리 된 상태이다.
- 수량
- 일원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63-6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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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사(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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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에 현오국사가 지은 사찰로 원래 만행사라 불렀던 것을 후에 귀정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사찰이름을 바꾼 유래에 대하여는 백제의 왕이 3일간 승려의 설법을 들으며 귀정사에서 국정을 살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고려 목종 5년(1002)과 세조 14년(1468) 두 차례에 걸쳐 크게 고쳐지었는데, 이때가 귀정사의 전성시대였다. 그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파손된 것을 현종 5년(1664)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모습대로 고쳐 짓고, 순조 4년(1804)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공비토벌 작전상의 이유로 유엔군이 모두 불태워 버렸다. 기록에 의하면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상실, 명월당이 있었으며, 부속암자로는 남암, 대은암, 영당, 낙은암이 있었다 하나 모두 소실되고, 현재는 유정동 스님의 노력으로 대웅전, 승당, 산신각, 요사만을 새로 짓고, 1968년에 마무리 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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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사는 백제 무녕왕 15년(515년)에 현오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는 만행사(萬行寺)라 불렸다. 이후에 백제의 왕이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高僧)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무르며 국정을 살피고 돌아갔다 하여 귀정사(歸政寺)라 고쳐 불렀다. 왕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1221년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귀정사에 제2의 백련결사를 개설했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대은스님이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 세조 14년(1468년)에 낙은스님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됐다. 현종 5년(1664년)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졌고, 순조 4년(1804년)에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옛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정사에 살던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자 만공스님이 큰 법당에 모셔졌던 삼존불상을 충청도 수덕사 대웅전으로 옮겼고, 지금도 그곳에 모셔져 있다.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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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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