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Korea OpenAPI
충효동 정려비각 공식 관광정보


+1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 전화 / 안내
- 광주북구청 문화예술과 062-410-6622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5.02.25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덕령(1567∼1596)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그의 형 김덕홍(1558∼1592), 그의 아우 김덕보(1571∼1596) 등 일가족의 충효와 절개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마을 앞에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김덕령은 그의 형이 고경명의 지휘 아래 참전한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중(喪中)인데도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해 진해와 고성 등지에서 싸웠다. 그러나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혹독한 고문 끝에 20일만에 옥사하였다. 그의 부인 이씨는 정유재란 때 추월산에 피신해 있다가 일본군의 추격을 받고 순절하였다. 또한 그의 동생은 두 형을 잃고 전쟁 후에 잠시 장릉참봉이란 벼슬을 지냈을 뿐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생활을 하였다. 이 비는 정조 13년(1789) 세운 것으로 높이 220㎝·너비 68㎝이며, 위쪽에는 비각을 얹어 놓았다. 비각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이 둘렀다. 특히 비석의 뒷면에는 김장군 일가의 충·열·효에 대한 칭찬의 글 뿐 아니라 ‘충효지리(忠孝之里)’라는 동네 이름까지 임금이 직접 지어 내렸다는 내용이 써있어 특이하다.
- 수량
- 일곽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청 문화예술과 062-410-6622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광주광역시 · 북구 · 관광지
충효동 정려비각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5.02.25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덕령(1567∼1596)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그의 형 김덕홍(1558∼1592), 그의 아우 김덕보(1571∼1596) 등 일가족의 충효와 절개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마을 앞에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김덕령은 그의 형이 고경명의 지휘 아래 참전한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중(喪中)인데도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해 진해와 고성 등지에서 싸웠다. 그러나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혹독한 고문 끝에 20일만에 옥사하였다. 그의 부인 이씨는 정유재란 때 추월산에 피신해 있다가 일본군의 추격을 받고 순절하였다. 또한 그의 동생은 두 형을 잃고 전쟁 후에 잠시 장릉참봉이란 벼슬을 지냈을 뿐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생활을 하였다. 이 비는 정조 13년(1789) 세운 것으로 높이 220㎝·너비 68㎝이며, 위쪽에는 비각을 얹어 놓았다. 비각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이 둘렀다. 특히 비석의 뒷면에는 김장군 일가의 충·열·효에 대한 칭찬의 글 뿐 아니라 ‘충효지리(忠孝之里)’라는 동네 이름까지 임금이 직접 지어 내렸다는 내용이 써있어 특이하다.
- 수량
- 일곽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청 문화예술과 062-410-6622
VisitKorea OpenAPI
충효동 정려비각 공식 관광정보


+1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 전화 / 안내
- 광주북구청 문화예술과 062-410-6622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