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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성이씨 종택 공식 관광정보


+6이 건물은 진성이씨(眞城李氏) 주하세거(周下世居) 경류정종택으로 당초 건립 연대(建立年代)는 미상이나 별당(別堂)인 경류정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23년(1492)에 이연(李演) 선생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정은 이황(李滉)의 증조부로, 세종 때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변진(寧邊鎭)을 쌓았으며, 선산도호부사를 지냈다. 진성이씨가 안동 풍산 마애(麻厓)에서 이곳 주하, 즉 주촌(周村)으로 옮겨온 것은 이정의 부친인 이운후(李云候)에 의해서였다. 이운후는 진성이씨 안동 입향조이자 부친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진성이씨 대종택의 위상을 갖는다. 건물의 구조는 정침 외에 경류정,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바닥을 지면(地面)에서 높이 띄우고 앞쪽에 툇마루를 내었다. 경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기둥은 원형(圓形)인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정침과 경류정 뒤에 서남향으로 앉은 사당은 3칸으로 5량가의 겹처마집이다. 방앗간채는 문간과 고방 및 방앗간 2칸으로 된 4칸 집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의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종택이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0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2017.06.29
- 지정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진성이씨(송안군)의 ‘대종가’로 고려말 문신 송안군 이자수(李子脩)가 14세기 종택의 현 위치인 두루마을 터를 잡아 노년을 보냈다고 전해지며, 7세 훈(李壎,1467~1538)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건 중수하게 됨 ○ 종택은 본채, 별당,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내삼문으로 구성되며, 종택의 맨 앞쪽에 행랑채가 사랑 공간의 전방 조망에 장애가 되지 않게 우측으로 빗겨 배치되어 있고 그 뒤쪽에 양측 날개채를 둔 완전口자형 본채가 자리 잡고 있음. 본채의 좌측에는 별당(경류정)이, 우측에는 방앗간채가 있고, 본채 뒤편 좌측 높은 곳에 내삼문 및 사당이 위치함 ○ 성리학적 생활 규범에 따라 사랑채와 안채의 공간 영역 구분, 사당의 독립적 영역 구분 등 명확환 공간 구분은 17세기 이후 나타나는 배치 유형의 특징을 나타내며, 별당 앞마당에 있는 수령 약 600년의 뚝향나무(천연기념물)는 종택의 역사를 잘 보여줌 ○ 봉선록과 진성이씨세전유록 등의 문서에서 종택 건립과 관련된 여러 사실이 기술되어 있고, 특히 1929년 중수 과정을 기록한 “가옥중수택일기(家屋重修擇日記)”에 따르면 상량에 대한 전체 일정을 모든 가족들의 생년월일시를 참조하여 잡았음. 이 자료를 통하여 집을 건립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음. 그 외에도 혼례. 상례, 제례문화를 볼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전승되고 있음 ○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한 가문의 역사적인 변천, 향촌사회의 변화상을 규명해 볼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자료가 전승되는 공간으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음
- 수량
- 일곽(건물 6동, 토지 2,329.73㎡<2필지>)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주차
- 불가능
- 전화
- 안동시청 문화유산과 054-840-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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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진성이씨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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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2017.06.29
- 지정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진성이씨(송안군)의 ‘대종가’로 고려말 문신 송안군 이자수(李子脩)가 14세기 종택의 현 위치인 두루마을 터를 잡아 노년을 보냈다고 전해지며, 7세 훈(李壎,1467~1538)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건 중수하게 됨 ○ 종택은 본채, 별당,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내삼문으로 구성되며, 종택의 맨 앞쪽에 행랑채가 사랑 공간의 전방 조망에 장애가 되지 않게 우측으로 빗겨 배치되어 있고 그 뒤쪽에 양측 날개채를 둔 완전口자형 본채가 자리 잡고 있음. 본채의 좌측에는 별당(경류정)이, 우측에는 방앗간채가 있고, 본채 뒤편 좌측 높은 곳에 내삼문 및 사당이 위치함 ○ 성리학적 생활 규범에 따라 사랑채와 안채의 공간 영역 구분, 사당의 독립적 영역 구분 등 명확환 공간 구분은 17세기 이후 나타나는 배치 유형의 특징을 나타내며, 별당 앞마당에 있는 수령 약 600년의 뚝향나무(천연기념물)는 종택의 역사를 잘 보여줌 ○ 봉선록과 진성이씨세전유록 등의 문서에서 종택 건립과 관련된 여러 사실이 기술되어 있고, 특히 1929년 중수 과정을 기록한 “가옥중수택일기(家屋重修擇日記)”에 따르면 상량에 대한 전체 일정을 모든 가족들의 생년월일시를 참조하여 잡았음. 이 자료를 통하여 집을 건립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음. 그 외에도 혼례. 상례, 제례문화를 볼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전승되고 있음 ○ 안동 진성이씨 종택은 한 가문의 역사적인 변천, 향촌사회의 변화상을 규명해 볼 수 있는 역사문화적인 자료가 전승되는 공간으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음
- 수량
- 일곽(건물 6동, 토지 2,329.73㎡<2필지>)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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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 안동시청 문화유산과 054-840-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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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 건물은 진성이씨(眞城李氏) 주하세거(周下世居) 경류정종택으로 당초 건립 연대(建立年代)는 미상이나 별당(別堂)인 경류정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23년(1492)에 이연(李演) 선생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정은 이황(李滉)의 증조부로, 세종 때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변진(寧邊鎭)을 쌓았으며, 선산도호부사를 지냈다. 진성이씨가 안동 풍산 마애(麻厓)에서 이곳 주하, 즉 주촌(周村)으로 옮겨온 것은 이정의 부친인 이운후(李云候)에 의해서였다. 이운후는 진성이씨 안동 입향조이자 부친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진성이씨 대종택의 위상을 갖는다. 건물의 구조는 정침 외에 경류정,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바닥을 지면(地面)에서 높이 띄우고 앞쪽에 툇마루를 내었다. 경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기둥은 원형(圓形)인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정침과 경류정 뒤에 서남향으로 앉은 사당은 3칸으로 5량가의 겹처마집이다. 방앗간채는 문간과 고방 및 방앗간 2칸으로 된 4칸 집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의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종택이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0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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