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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고봉정사 공식 관광정보


+1기묘사화의 파도가 몰아치던 조선 중종 연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학자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강당이 지금도 보은 땅에 남아 있다. 고봉정사는 시문·서화·음률·수학에 두루 뛰어났던 조선 중기 학자 최수성(1487~1534) 선생이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 낙향해 김정·구수복 등과 함께 시를 읊고 후학을 강학한 곳이다. 이후 구수복이 이어받았고 그의 5대손 구일봉이 퇴락한 건물을 현 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1981년 해체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최수성은 중종 16년(1521)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형되었으나 뒤에 신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정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강당은 조선 사림 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 유적지로, 인근 속리산·법주사와 연계해 방문하기 좋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12.31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중기 김정이 학문을 연마하고 즐기던 곳에 최수성이 고봉정을 세웠다. 이름은 김정이 삼파연류봉을 고봉이라고 하고 올라가 즐긴데서 비롯되었으며,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에는 구수복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 뒤 정자가 낡자 구수복의 5세손인 이천이 봉우리 아래로 옮겨 지으면서 지금의 건물로 세웠다 한다. 김정(1486∼1520)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중종 2년(1507)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 이조정랑 등을 거쳐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사림의 대표적 인물로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를 위해 미신타파, 향약의 실시 등을 추진하였다. 최수성(1487∼1521)은 조선 전기 선비화가로 김굉필에게 배웠으며 신진 사림파 학자로 조광조, 김정 등과 교유하였다. 구수복(1491∼1545)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1519년 기묘사화 후 파직되었으며 김정 등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경학에 몰두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었고 1981년 해체·보수하여 고봉사, 관리사, 창고, 삼문 등을 새로 지었다. 정자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보은군청 문화관광과 043-540-3407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충청북도 · 보은군 · 관광지
보은 고봉정사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4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12.31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중기 김정이 학문을 연마하고 즐기던 곳에 최수성이 고봉정을 세웠다. 이름은 김정이 삼파연류봉을 고봉이라고 하고 올라가 즐긴데서 비롯되었으며,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에는 구수복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 뒤 정자가 낡자 구수복의 5세손인 이천이 봉우리 아래로 옮겨 지으면서 지금의 건물로 세웠다 한다. 김정(1486∼1520)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중종 2년(1507)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 이조정랑 등을 거쳐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사림의 대표적 인물로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를 위해 미신타파, 향약의 실시 등을 추진하였다. 최수성(1487∼1521)은 조선 전기 선비화가로 김굉필에게 배웠으며 신진 사림파 학자로 조광조, 김정 등과 교유하였다. 구수복(1491∼1545)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1519년 기묘사화 후 파직되었으며 김정 등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경학에 몰두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었고 1981년 해체·보수하여 고봉사, 관리사, 창고, 삼문 등을 새로 지었다. 정자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 수량
- 1동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보은군청 문화관광과 043-540-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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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묘사화의 파도가 몰아치던 조선 중종 연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학자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강당이 지금도 보은 땅에 남아 있다. 고봉정사는 시문·서화·음률·수학에 두루 뛰어났던 조선 중기 학자 최수성(1487~1534) 선생이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 낙향해 김정·구수복 등과 함께 시를 읊고 후학을 강학한 곳이다. 이후 구수복이 이어받았고 그의 5대손 구일봉이 퇴락한 건물을 현 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1981년 해체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최수성은 중종 16년(1521)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형되었으나 뒤에 신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정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강당은 조선 사림 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 유적지로, 인근 속리산·법주사와 연계해 방문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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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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