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남도진성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도길 8-834.3639, 126.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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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남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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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남도진성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14 · VisitKorea
진도_진도 남도진성 (2)
ⓒ한국관광공사 공식사진 · 4장
진도_진도 남도진성 (3)
진도_진도 남도진성 (4)+1

진도는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번창해서 옥주라고도 부른다. ‘한 해 농사지어 삼 년을 먹는다’라는 말이 아직까지 내려올 정도로 물산과 인심이 넉넉한 고장이다. 진도는 예향이면서 워낙 외진 곳이기에 유배지로도 활용되었고, 군사적 요충지라서 군사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남도진성은 백제 시대 매구리현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여겨지는데, 고려 원종 때 삼별초군이 진도로 남하한 몽골군과의 항쟁을 위한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며, 그 후 1438년 세종 20년에 또다시 성을 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도진성은 높이 4~6m, 폭은 2.5∼3m가량 되는 성으로 둘레가 610m이다. 둥그런 성벽과 동문, 서문, 남문이 거의 그대로 있으며, 서문 양옆에 밖으로 튀어나온 치가 남아있다. 남도진성 남문 앞으로 흘러가는 가느다란 개울 위에는 쌍운교와 단운교 두 개의 운교(무지개다리)가 놓여있다. 두 개 모두 편마암질의 판석을 겹쳐 세워 만든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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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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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남도진성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0 기준
지정일
1964.06.10
시대
조선시대
지정 종목
사적
유산 소개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백제 때 진도에는 3개의 마을이 있었고 그 중 한 마을의 중심지가 이곳으로 여겨지는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3세기부터는 왜구가 나타나서 노략질을 계속해 오자,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진도의 관청과 백성들이 내륙지방으로 피해서 살다가 세종대왕 초에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세종 20년(1438) 해안지방에 주로 설치되던 군사조직인 만호부가 이 지역에 생기게 되고 왜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 400여m 정도이지만,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br/><b>※(남도석성 → 진도 남도진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수량
41,367㎡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불가능
전화
061-54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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