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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공식 관광정보


+8한산도의 이충무공 유적지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에 조성된 건물, 비석, 동산문화재 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본영을 설치하고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직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 지 142년만인 1739년 제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옛터에 예대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친필현판을 걸었다. 그 후 1760년 이충무공의 후손 이태상제121대 통제사가 낡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유허비를 손질하고 비각을 뒤로 옮겨 세웠다. 40여 년 후 대대적인 정화 사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 유적지에는 충무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 등 당우를 비롯하여 비각 5동과 5개문, 기타 부속건물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2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 선조 25년(1592) 이곳에 제승당(制勝堂)을 짓고, 26년(1593)부터 30년(1597)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영조 15년(1739)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 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br/><b>※(한산도이충무공유적 →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528,027㎡
- 영업시간
- ※ 자세한 사항은 전화문의 요망
- 주차
- 불가능
- 전화
- 055-254-4481
- 이용 시즌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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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 통영시 · 관광지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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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 선조 25년(1592) 이곳에 제승당(制勝堂)을 짓고, 26년(1593)부터 30년(1597)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영조 15년(1739)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 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br/><b>※(한산도이충무공유적 →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528,027㎡
- 영업시간
- ※ 자세한 사항은 전화문의 요망
- 주차
- 불가능
- 전화
- 055-254-4481
- 이용 시즌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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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산도의 이충무공 유적지는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제승당 일원에 조성된 건물, 비석, 동산문화재 광장, 조경물 등과 풍치림야를 통칭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본영을 설치하고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직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정유재란으로 한산 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 지 142년만인 1739년 제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옛터에 예대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친필현판을 걸었다. 그 후 1760년 이충무공의 후손 이태상제121대 통제사가 낡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유허비를 손질하고 비각을 뒤로 옮겨 세웠다. 40여 년 후 대대적인 정화 사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 유적지에는 충무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 등 당우를 비롯하여 비각 5동과 5개문, 기타 부속건물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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