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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면장군유적 공식 관광정보


+4김면장군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송암 김면(1541~1593) 장군의 묘소, 신도비, 도암사, 도암재, 도암서당을 일괄하여 지정한 사적지이다. 김면장군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 거창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 수십 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선산대전을 앞두고 충청․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주둔하고 있을 당시에 병을 얻었다. 장군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는 충절의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실기」 3권이 있다. 현종 7년(1667) 유학자들이 고령읍에 추모사당을 건립하였다. 정조 13년(1789) 사당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신도비를 건립하여 그의 높은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고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8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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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0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8.09.2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송암(松菴) 김면(1541~1593) 장군의 묘소, 신도비(神道碑), 도암사(道巖祠), 도암재(道巖齋), 도암서당(道巖書堂)을 일괄하여 지정한 사적지이다. 김면장군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 거창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 수십 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가 되었으나, 선산대전을 앞두고 충청․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주둔하고 있을 당시에 병을 얻었다. 장군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는 충절의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실기』3권이 있다. 현종(顯宗) 7년(1667) 유학자들이 고령읍에 추모사당을 건립하였다. 정조(正祖) 13년(1789) 사당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신도비를 건립하여 그의 높은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고 있다.
- 수량
- 30,992㎡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고령군 문화유산과 054-950-6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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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 고령군 · 관광지
김면장군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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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송암(松菴) 김면(1541~1593) 장군의 묘소, 신도비(神道碑), 도암사(道巖祠), 도암재(道巖齋), 도암서당(道巖書堂)을 일괄하여 지정한 사적지이다. 김면장군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 거창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 수십 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가 되었으나, 선산대전을 앞두고 충청․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주둔하고 있을 당시에 병을 얻었다. 장군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는 충절의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실기』3권이 있다. 현종(顯宗) 7년(1667) 유학자들이 고령읍에 추모사당을 건립하였다. 정조(正祖) 13년(1789) 사당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신도비를 건립하여 그의 높은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고 있다.
- 수량
- 30,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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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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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김면장군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송암 김면(1541~1593) 장군의 묘소, 신도비, 도암사, 도암재, 도암서당을 일괄하여 지정한 사적지이다. 김면장군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 거창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 수십 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159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선산대전을 앞두고 충청․전라도 의병과 함께 금산, 개령에 주둔하고 있을 당시에 병을 얻었다. 장군은 ‘오로지 나라만이 있는 줄 알았고, 내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라는 충절의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실기」 3권이 있다. 현종 7년(1667) 유학자들이 고령읍에 추모사당을 건립하였다. 정조 13년(1789) 사당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신도비를 건립하여 그의 높은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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