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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명활성 공식 관광정보


+3경주 명활성은 명활산을 둘러싸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으로 경주 주변의 남산신성, 서형산성, 북형산성과 함게 수도 방어시설로 큰 몫을 한 곳이다. 성의 둘레는 약 6㎞로 토성과 함께 석성이 함께 있는데, 석성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한 신라 초기의 축성 방식을 보이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해 왔으나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자비왕 18년(475)부터 소지왕 10년(488)까지는 이곳을 궁성으로 사용하였다. 선덕여왕 때에는 비담 등이 이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관군에게 평정되었다. 성 주변에서 진흥왕 12년(551)에 만든 명활산성 작성비가 발견되어 공사 총책임자, 실무자, 공사기간 등 당시 축성에 관한 내용을 전해 주는데 처음에 토성이었다가 이때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신라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다.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진흥왕 15년(55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겨우 몇 군데에서만 옛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진흥왕 때의 ‘명활산성작성비’가 발견되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으며, ‘명활산성비’로 보이는 비석조각이 안압지에서 발견되었다. 선덕여왕 때는 비담(毗曇)이 이 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평정하기도 했으며, 남산성·선도산성·북형산성과 함께 동해로 쳐들어오는 외적(外敵)에 대항하여 경주를 지키는데 큰 몫을 한 곳이다. <br/><b>※(명활산성 → 경주 명활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895,706㎡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경주시 관광안내소 054-772-9289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경상북도 · 경주시 · 관광지
경주 명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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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신라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다.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진흥왕 15년(55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겨우 몇 군데에서만 옛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진흥왕 때의 ‘명활산성작성비’가 발견되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으며, ‘명활산성비’로 보이는 비석조각이 안압지에서 발견되었다. 선덕여왕 때는 비담(毗曇)이 이 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평정하기도 했으며, 남산성·선도산성·북형산성과 함께 동해로 쳐들어오는 외적(外敵)에 대항하여 경주를 지키는데 큰 몫을 한 곳이다. <br/><b>※(명활산성 → 경주 명활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895,706㎡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경주시 관광안내소 054-772-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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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주 명활성은 명활산을 둘러싸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으로 경주 주변의 남산신성, 서형산성, 북형산성과 함게 수도 방어시설로 큰 몫을 한 곳이다. 성의 둘레는 약 6㎞로 토성과 함께 석성이 함께 있는데, 석성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한 신라 초기의 축성 방식을 보이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해 왔으나 격퇴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자비왕 18년(475)부터 소지왕 10년(488)까지는 이곳을 궁성으로 사용하였다. 선덕여왕 때에는 비담 등이 이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관군에게 평정되었다. 성 주변에서 진흥왕 12년(551)에 만든 명활산성 작성비가 발견되어 공사 총책임자, 실무자, 공사기간 등 당시 축성에 관한 내용을 전해 주는데 처음에 토성이었다가 이때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7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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