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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진덕여왕릉 공식 관광정보


이 무덤은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덕여왕은 본명이 승만이며,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다. 산라의 두 번째 여왕이면서 성골로서는 마지막 왕이다. 진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라 재위 기간에 관료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당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김유신을 내세워 백제와의 잦은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다. 진덕여왕이 죽었을 때 사량부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무덤은 안태봉 남쪽 능선에 단독으로 있다. 가장자리에 돌판과 버팀돌로 둘레돌을 둘렀고, 버팀돌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다른 왕릉에 비해 십이지신상이 작고 조각이 얕아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 중에서도 늦은 시기의 것으로 평가한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3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신라 진덕여왕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의 무덤이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2번째 여왕으로 본명은 승만이다.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과 월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라의 마지막 성골 출신 왕이다. 7년간 왕으로 있는 동안 국력을 기르고 당나라와 적극적 외교를 통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무덤은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이고, 아래부분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둘레돌 사이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12개의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새겼다. 그 위에는 긴 돌을 한번 더 올려 놓았는데, 뒤에 보수하여 원래의 것이 아닌 것도 있다. 둘레돌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돌난간을 세운 듯하나 지금은 거의 다 없어져 남아있지 않다. 무덤 앞에는 이외에 별다른 석조물이 없고, 최근에 만든 통로와 축대가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54년에 왕이 죽자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사량부는 현재 경주 시내의 서남쪽 일대로 짐작되는데, 이 무덤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무덤 형식도 제33대 성덕왕 이후에 발달한 형식이고, 12지신상의 조각수법도 신라왕릉의 12지신상 중 가장 늦은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이 무덤이 진덕여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br/><b>※(신라진덕여왕릉 → 경주 진덕여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151,537㎡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경주시청 문화유산과 054-779-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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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 경주시 · 관광지
경주 진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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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63.01.21
- 시대
- 신라 진덕여왕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경주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의 무덤이다. 진덕여왕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2번째 여왕으로 본명은 승만이다.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과 월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신라의 마지막 성골 출신 왕이다. 7년간 왕으로 있는 동안 국력을 기르고 당나라와 적극적 외교를 통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무덤은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이고, 아래부분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였다. 둘레돌 사이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12개의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새겼다. 그 위에는 긴 돌을 한번 더 올려 놓았는데, 뒤에 보수하여 원래의 것이 아닌 것도 있다. 둘레돌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돌난간을 세운 듯하나 지금은 거의 다 없어져 남아있지 않다. 무덤 앞에는 이외에 별다른 석조물이 없고, 최근에 만든 통로와 축대가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54년에 왕이 죽자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사량부는 현재 경주 시내의 서남쪽 일대로 짐작되는데, 이 무덤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무덤 형식도 제33대 성덕왕 이후에 발달한 형식이고, 12지신상의 조각수법도 신라왕릉의 12지신상 중 가장 늦은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이 무덤이 진덕여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br/><b>※(신라진덕여왕릉 → 경주 진덕여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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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경주시청 문화유산과 054-779-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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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은 신라 제28대 진덕여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진덕여왕은 본명이 승만이며,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이다. 산라의 두 번째 여왕이면서 성골로서는 마지막 왕이다. 진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라 재위 기간에 관료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당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김유신을 내세워 백제와의 잦은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다. 진덕여왕이 죽었을 때 사량부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무덤은 안태봉 남쪽 능선에 단독으로 있다. 가장자리에 돌판과 버팀돌로 둘레돌을 둘렀고, 버팀돌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다. 다른 왕릉에 비해 십이지신상이 작고 조각이 얕아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 중에서도 늦은 시기의 것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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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3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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