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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건신도비 공식 관광정보


+1거북과 용머리를 새긴 고홍건신도비는 1668년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다.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흥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고희의 아들로, 1580년에 출생하였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년 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년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8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04.01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고홍건을 기리고 있다. 고홍건(1580∼1655)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몸집도 커서 23세 때인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왕을 모시고 공주로 피난을 갔는데 그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에 책봉되었다. 병자호란 때에 왕이 남한산성으로 옮기자 어가를 모시었고, 서쪽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난이 끝난 후에는 여러 관직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까지 올랐으며, 효종 6년(1655) 76세로 생을 마치었다. 고씨문중의 산인 석불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비는 아래로 높직한 거북받침돌을 두고, 그 위로 비몸을 세운 뒤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살짝 쳐들게 하여 힘찬 기상을 표현하였고, 구름과 용을 새긴 머릿돌은 꼭대기에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을 조각해 두었다. 조선 현종 9년(1668)에 세운 비로, 조복양이 지은 글에 이정영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 두었다.
- 수량
- 1기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부안군청 문화예술과 063-580-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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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 부안군 · 관광지
고홍건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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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08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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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일
- 1984.04.01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고홍건을 기리고 있다. 고홍건(1580∼1655)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몸집도 커서 23세 때인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왕을 모시고 공주로 피난을 갔는데 그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에 책봉되었다. 병자호란 때에 왕이 남한산성으로 옮기자 어가를 모시었고, 서쪽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난이 끝난 후에는 여러 관직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까지 올랐으며, 효종 6년(1655) 76세로 생을 마치었다. 고씨문중의 산인 석불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비는 아래로 높직한 거북받침돌을 두고, 그 위로 비몸을 세운 뒤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살짝 쳐들게 하여 힘찬 기상을 표현하였고, 구름과 용을 새긴 머릿돌은 꼭대기에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을 조각해 두었다. 조선 현종 9년(1668)에 세운 비로, 조복양이 지은 글에 이정영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 두었다.
- 수량
- 1기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부안군청 문화예술과 063-580-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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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홍건신도비 공식 관광정보


+1거북과 용머리를 새긴 고홍건신도비는 1668년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다.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흥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고희의 아들로, 1580년에 출생하였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년 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년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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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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