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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송병일 고택 공식 관광정보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1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01.14
- 시대
- 조선 광해군 12년(1620)
- 지정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처음 지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우암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대한제국 시기에 충청감사로 있을 때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충북양로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여러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사당, 대문채만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앞이 트인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그 사이에 낮은 담장을 가로질러 영역을 구분하였다. 안채 앞에는 ‘一’자형의 곳간채가 길게 가로막고 서있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대문채와 마주 보고 서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담장에 난 협문을 통해야만 안채로 진입할 수 있다. 결국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영역을 지나지 않고는 여성들의 거주공간인 안영역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한 배치를 갖추었으며 이는 성리학적 질서에 충실한 조선시대 사대부 민가 공간구성 수법의 좋은 사례이다. 안채는 7칸 크기의 몸채 동·서 끝단에 3칸의 날개를 앞으로 붙여 ‘ㄷ’자형으로 만들었다. 안채의 가운데에 각 2칸의 큰방과 대청을 두고 큰방 서쪽에 안방과 부엌이 연이어 있으며, 대청의 동쪽에는 작은방을 붙였다. 서쪽 날개는 3칸의 크기의 부엌에 이어 앞으로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동쪽 날개는 작은방 앞의 툇마루를 사이에 두고 2칸의 방과 1칸의 방으로 구성하였다. 안방에서 작은방의 앞으로는 툇마루를 두어 동선을 연결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은 ‘ㄷ’자형으로 안채보다 규모가 작다. 6칸의 크기의 몸채 앞으로 2칸의 날개를 내밀어 평면을 구성하였고, 몸채 가운데를 둘로 나누어 서쪽은 안사랑, 동쪽은 대청이 각 2칸으로 되어 있다. 안사랑의 연이은 서쪽의 뒷칸에는 골방, 앞칸에는 부엌을 두고 그 앞으로 2칸의 작은사랑방을 내밀어 서쪽 날개를 이루고 있다. 대청의 동쪽에 붙은 방은 윗사랑방 앞으로는 2칸의 마루방을 두고 앞칸은 한단 높여 누마루와 같이 만들었다. 사당은 대개 3칸이지만 이곳은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쪽에는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는 대청으로 되어있어 사당으로서는 특수한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19세 후반의 건물로 안채는 사랑채보다 지어진 연대가 조금 앞서며, 사랑채는 건축기법이 뛰어난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과 고친 부분이 있어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사대부집으로서 우수한 가치가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 수량
- 5필지/지정구역 3,898㎡ , 보호구역 1,917㎡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전화
- 괴산군 문화관광과 043-830-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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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 괴산군 · 관광지
괴산 송병일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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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5.11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01.14
- 시대
- 조선 광해군 12년(1620)
- 지정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처음 지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우암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대한제국 시기에 충청감사로 있을 때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충북양로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여러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사당, 대문채만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앞이 트인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그 사이에 낮은 담장을 가로질러 영역을 구분하였다. 안채 앞에는 ‘一’자형의 곳간채가 길게 가로막고 서있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대문채와 마주 보고 서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담장에 난 협문을 통해야만 안채로 진입할 수 있다. 결국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영역을 지나지 않고는 여성들의 거주공간인 안영역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한 배치를 갖추었으며 이는 성리학적 질서에 충실한 조선시대 사대부 민가 공간구성 수법의 좋은 사례이다. 안채는 7칸 크기의 몸채 동·서 끝단에 3칸의 날개를 앞으로 붙여 ‘ㄷ’자형으로 만들었다. 안채의 가운데에 각 2칸의 큰방과 대청을 두고 큰방 서쪽에 안방과 부엌이 연이어 있으며, 대청의 동쪽에는 작은방을 붙였다. 서쪽 날개는 3칸의 크기의 부엌에 이어 앞으로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동쪽 날개는 작은방 앞의 툇마루를 사이에 두고 2칸의 방과 1칸의 방으로 구성하였다. 안방에서 작은방의 앞으로는 툇마루를 두어 동선을 연결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은 ‘ㄷ’자형으로 안채보다 규모가 작다. 6칸의 크기의 몸채 앞으로 2칸의 날개를 내밀어 평면을 구성하였고, 몸채 가운데를 둘로 나누어 서쪽은 안사랑, 동쪽은 대청이 각 2칸으로 되어 있다. 안사랑의 연이은 서쪽의 뒷칸에는 골방, 앞칸에는 부엌을 두고 그 앞으로 2칸의 작은사랑방을 내밀어 서쪽 날개를 이루고 있다. 대청의 동쪽에 붙은 방은 윗사랑방 앞으로는 2칸의 마루방을 두고 앞칸은 한단 높여 누마루와 같이 만들었다. 사당은 대개 3칸이지만 이곳은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쪽에는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는 대청으로 되어있어 사당으로서는 특수한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19세 후반의 건물로 안채는 사랑채보다 지어진 연대가 조금 앞서며, 사랑채는 건축기법이 뛰어난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과 고친 부분이 있어 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사대부집으로서 우수한 가치가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 수량
- 5필지/지정구역 3,898㎡ , 보호구역 1,917㎡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전화
- 괴산군 문화관광과 043-830-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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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송병일 고택 공식 관광정보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고택으로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이 잘 남아있는 곳이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사당채 등이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안채 앞에는 ‘一’ 자 형태로 곳간채가 길게 세워져 있다. 3칸 크기의 대문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바닥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워 튼튼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안채는 작은 문을 거쳐 들어갈 수 있도록 담이 둘러져 있고 옆에서 보면 맞배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위치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광채는 일자형으로 곡식은 물론 각종 농기구를 보관하던 장소로 이용이 되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 주위로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당은 깨끗하게 포장을 하여 방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또 마당 한편에 뜰마루를 설치하여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잘 가꾼 잔디밭과 화초는 고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우암 송시열의 종손들이 6대에 걸쳐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우암 송시열의 묘가 고택 바로 위에 있기도 하다. 현재는 충북 양로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화양계곡과 선유계곡, 공림사 등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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