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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선생묘 공식 관광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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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지정일
- 1982.08.0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충신이었던 면암(勉菴) 최익현(1833∼1906) 선생의 묘소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고 14세 때 대학자 이항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종 10년(1873)에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과 서원 철폐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대원군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상소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 후 3년간의 유배생활을 통해 관직생활에 대한 뜻을 접고 위정척사론자로서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 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 단발령 실시, 불법적인 을사조약 체결 등을 반대하는 상소를 통해 강력한 위정척사론을 주장하면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1906년 제자 임병찬과 함께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제침략에 항거하다 체포되어 쓰시마섬에 유배되었고,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을 하다 숨을 거두었다. 최익현이 순국한 후 묏자리를 바로 구하지 못해 1907년 4월에서야 노성(현 논산시 노성면)에 장사 지냈고, 1909년 11월에 아들 최영조와 여러 문인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무덤의 입구에는 이선근이 글을 짓고 김기승이 글씨를 쓴 춘추대의비가 세워져 있다.
- 수량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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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충청남도 · 예산군 · 관광지
최익현선생묘
충남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산21-1번지36.5733, 126.7841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지정일
- 1982.08.03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충신이었던 면암(勉菴) 최익현(1833∼1906) 선생의 묘소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고 14세 때 대학자 이항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종 10년(1873)에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과 서원 철폐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대원군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상소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 후 3년간의 유배생활을 통해 관직생활에 대한 뜻을 접고 위정척사론자로서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 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 단발령 실시, 불법적인 을사조약 체결 등을 반대하는 상소를 통해 강력한 위정척사론을 주장하면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1906년 제자 임병찬과 함께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제침략에 항거하다 체포되어 쓰시마섬에 유배되었고,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을 하다 숨을 거두었다. 최익현이 순국한 후 묏자리를 바로 구하지 못해 1907년 4월에서야 노성(현 논산시 노성면)에 장사 지냈고, 1909년 11월에 아들 최영조와 여러 문인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무덤의 입구에는 이선근이 글을 짓고 김기승이 글씨를 쓴 춘추대의비가 세워져 있다.
- 수량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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