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맹선생묘및신도비

경기 시흥시 하상동 산2번지37.3948, 126.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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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지정일
1985.09.20
지정 종목
시도기념물
유산 소개
조선 초기 성종대의 뛰어난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선생의 묘이다. 세종 29년(1447) 24세로 장원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9년(1463) 중추원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다. 예종 즉위년(1468)에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으며, 성종 13년(1482)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이 당대 으뜸이고 글과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해 맡은 일을 잘 처리하였다.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경국대전』,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등에도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금양잡록』, 『사숙재집』, 『존담해이』 등이 있다. 또한,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는데,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독조도(獨釣圖)」가 강희맹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묘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묘역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부인 안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에 독특한 모습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왼쪽 아래에는 성종 19년(1488)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이 비문을 짓고 홍문관박사 박증영(朴增榮)이 ‘문량공신도비(文良公神道碑)’라는 전액(篆額, 전서체로 쓴 비신 상단부의 명칭)과 글씨를 썼다.
수량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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