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곡동 효열비각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로 69-4 (봉곡동)36.1569, 128.3150

VisitKorea OpenAPI

봉곡동 효열비각 공식 관광정보

한국관광공사 관광정보가 아직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주변 공식 관광정보

주변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관광정보: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OpenAPI

이 화면의 구성은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추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관광지 정보가 아직 없어요

공식 관광 정보가 확인되면 자동으로 채워집니다.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지정일
2000.09.04
시대
조선 순종(1681)
지정 종목
문화유산자료
유산 소개
한채의 비각에 걸려있는 3기의 현판과 그 안에 서 있는 2기의 비로, 한 집안내의 한 효자와 두 열녀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박진환(1605∼1650)은 조선 중기의 인물로, 평소에도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상주지역에 머물고 있던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이내 달려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 간호한 보람도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옮기어 묘소를 마련하였으며, 3년간 곁을 지킨 후 몸이 약해져 46세로 생을 마치었다. 숙종 7년(1681)에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한 현판을 내리고, 비를 세우도록 하였으며 이후 ‘통훈대부사헌부집의’에 올리었다가 다시 ‘통정대부이조참의’까지 벼슬을 올려 주었다. 숙종 때 세워놓았던 비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땅에 묻혔다가 그 윗부분만이 발견되어 비각 안에 세워두었고, 1974년에 새로이 비를 세워 그 옆에 함께 모셔놓았다. 박진환의 셋째 아들의 손주 며느리인 양주조씨(1696∼1724)는 그 남편의 천성이 똑바르고, 재주가 뛰어나나, 몸이 약하고 폐질환이 심해 항상 병에 시달렸다. 부인이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남편이 34세에 세상을 떠나자 이튿날 부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뒤따랐다. 영조 5년(1729)에 현판을 내리어 그 정신을 기리게 하였다. 박진환의 둘째 아들의 7세손 박내은의 처인 함종어씨(1778∼1811)는 남편 박내은이 총명하고 늠름하며 건강하였는데, 순조 11년(1811)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니 부인도 뒷뜰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어 남편을 뒤따랐다. 조정에서는 이듬해인 순조 12년(1812)에 현판을 내리어 주위에 모범이 되도록 하였다.
수량
1기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