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김창숙 생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35.8992, 128.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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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생가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05 · VisitKorea

이 가옥은 독립운동과 교육진흥에 일생을 바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이 출생한 생가이다. 선조로부터 세거(世居) 해 온 전래의 건물은 모두 화재로 소실되고, 현 안채 건물은 광무 5년(1901)에 중건(重建)된 것이다. 생가는 청천서당(晴川書堂)에서 우측으로 약 100m 거리에 위치하며, 장방형 토석담 내에 안채와 1991년에 건립한 사랑채, 판각고(板刻庫) 등이 ㄷ자형으로 이루고 있다. 김창숙의 호는 심사·벽옹(躄翁),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조선 선조조의 명신이며 학자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후손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기 이전부터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하고, 강점된 후에는 유림으로서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일제에 의해 투옥되어 갖은 옥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유도회를 조직, 성균관대학을 창립하여 초대총장을 역임하였다. 김창숙은 전생을 독립운동과 민족문화 창달·국민 교육에 크게 이바지한 민족 지도자였으며, 이러한 공로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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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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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생가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91.05.14
시대
대한제국
지정 종목
시도기념물
유산 소개
구한말 유학자인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의 생가이다. 선생은 구한말 유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이고 정치인으로 경상북도 성주 출신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승희와 함께 상경하여 상소를 올리고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130여명의 연명으로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만국평화회의에 보내기도 하였다. 1953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향교 재단을 규합하여 성균관 대학의 종합대학 승격을 인가받고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 시문집인 『심산만초』와 『벽옹만초』 등이 있다. 생가는 선생이 22세 되던 해에 화재를 당하여 1901년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이전 건물을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선조 대대로 살아온 것으로 보이며 고종 16년(1879)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수량
1,094㎡
영업시간
09:00~18:00
주차
불가능
전화
성주군 문화예술과 054-930-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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