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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 공식 관광정보


+1고려말 야은 길재(1353~1419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다. 경내에는 다섯 선현의 위패를 모신 상현묘와 누문인 읍청루, 동재, 서재, 정학당, 내삼문이 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향사를 지내고 있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1602년(선조 35) 선산부사 김용(1557∼1620)과 지방 사림들에 의해 지금의 남산 기슭에 복원되었다. 서원에는 성리학의 대통을 이어받은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 등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길재는 이색, 정몽주, 권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386년 진사시에 합격한 문인으로 고려말 성균박사를 지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이 태상박사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고 낙향하여 금오산 기슭에 오두막을 짓고 충절 하며 살았다. 현재 그 자리에는 명승인 구미 채미정이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5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당일
- 지정일
- 1985.10.15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금오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세웠으며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고,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사액되었다. 이 때 점필재 김종직·신당 정붕·송당 박영·여헌 장현광을 추가로 모셨다. 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묘를 비롯하여 정학당, 동재와 서재, 읍청루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은 서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 수량
- 5,577㎡
- 영업시간
- 09:00~18:00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구미시청 문화예술과 국가유산팀 054-480-6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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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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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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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금오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세웠으며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고,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사액되었다. 이 때 점필재 김종직·신당 정붕·송당 박영·여헌 장현광을 추가로 모셨다. 서원 경내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묘를 비롯하여 정학당, 동재와 서재, 읍청루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은 서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 수량
- 5,577㎡
- 영업시간
-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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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청 문화예술과 국가유산팀 054-480-6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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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말 야은 길재(1353~1419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다. 경내에는 다섯 선현의 위패를 모신 상현묘와 누문인 읍청루, 동재, 서재, 정학당, 내삼문이 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향사를 지내고 있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1602년(선조 35) 선산부사 김용(1557∼1620)과 지방 사림들에 의해 지금의 남산 기슭에 복원되었다. 서원에는 성리학의 대통을 이어받은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 등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길재는 이색, 정몽주, 권근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386년 진사시에 합격한 문인으로 고려말 성균박사를 지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이 태상박사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고 낙향하여 금오산 기슭에 오두막을 짓고 충절 하며 살았다. 현재 그 자리에는 명승인 구미 채미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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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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