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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령) 공식 관광정보
의령에 있는 수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승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면 소재지에서 신덕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약 5km가량 가다보면 오른편에 이목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를 끼고 1km쯤 더 들어가면 멀리 산 아래 몇 채의 마을이 바라 보이는 지점에서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양편에 요사체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각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 지어 놓았다. 극락전 앞뜰의 5층 석탑은 하부기단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형상으로 서있는데 이 석탑의 원위치는 그 자리가 아닌 듯 보인다.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또 수도사는 동쪽 산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군이 서 있는바 이것들을 미루어 옛날에는 이 절의 규모가 제법 컷을 것이라는 주지의 말이다. 한편 이절이 있는 신덕산은 합천의 황매산으로부터 뻗어온 줄기로 산세가 매우 웅장할 뿐만 아니라 우거진 잡목림에 경관이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수도사는 지금부터 약 1300여 년전, 신라의 30대 문무왕 2년 (66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라고는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 7왕자가 의령 수도산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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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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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98.01.15
- 시대
- 의령 수도사 석탑 및 승탑군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수도사 석탑은 화강암 재질로 높이 2.5m정도이다. 기단부는 후대 보수과정에서 자연석과 콘크리트를 이용해 지대석을 마련한 후 안상이 새겨진 하층기단석 4매를 놓았다. 상층기단석은 1매로 우주와 탱주를 조각하였으나 위쪽의 갑석은 결실되었다. 탑신은 1매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1총ㆍ 3층 탑신에는 우주가 없으나, 2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다. 옥개석은 1층ㆍ2층ㆍ3총ㆍ4층 모두 층받침이 없고 추녀 및 전각의 반전이 심하다. 상륜부의 노반과 보주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보주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을 조각하였다. 수도사 석탑은 후대 어떠한 사유로 시기를 달리하는 석재들이 뒤섞여 복원이 되어 있다. 즉 하총기단석과 상층기단석·2층 탑신은 동일 시기로 판단되나 그 위의 옥개석과 1총·3층 탑신은 형식이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즉 전자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고, 1층·3총 탑신과 옥개석은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수도사 동쪽 산기슭에는 승려들의 유골을 모신 10기의 승탑이 있다.
- 수량
- 11기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055-57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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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 의령군 · 관광지
수도사(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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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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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일
- 1998.01.15
- 시대
- 의령 수도사 석탑 및 승탑군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수도사 석탑은 화강암 재질로 높이 2.5m정도이다. 기단부는 후대 보수과정에서 자연석과 콘크리트를 이용해 지대석을 마련한 후 안상이 새겨진 하층기단석 4매를 놓았다. 상층기단석은 1매로 우주와 탱주를 조각하였으나 위쪽의 갑석은 결실되었다. 탑신은 1매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1총ㆍ 3층 탑신에는 우주가 없으나, 2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다. 옥개석은 1층ㆍ2층ㆍ3총ㆍ4층 모두 층받침이 없고 추녀 및 전각의 반전이 심하다. 상륜부의 노반과 보주는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보주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을 조각하였다. 수도사 석탑은 후대 어떠한 사유로 시기를 달리하는 석재들이 뒤섞여 복원이 되어 있다. 즉 하총기단석과 상층기단석·2층 탑신은 동일 시기로 판단되나 그 위의 옥개석과 1총·3층 탑신은 형식이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즉 전자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고, 1층·3총 탑신과 옥개석은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수도사 동쪽 산기슭에는 승려들의 유골을 모신 10기의 승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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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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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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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
-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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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 있는 수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승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면 소재지에서 신덕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약 5km가량 가다보면 오른편에 이목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를 끼고 1km쯤 더 들어가면 멀리 산 아래 몇 채의 마을이 바라 보이는 지점에서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양편에 요사체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각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 지어 놓았다. 극락전 앞뜰의 5층 석탑은 하부기단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형상으로 서있는데 이 석탑의 원위치는 그 자리가 아닌 듯 보인다.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또 수도사는 동쪽 산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군이 서 있는바 이것들을 미루어 옛날에는 이 절의 규모가 제법 컷을 것이라는 주지의 말이다. 한편 이절이 있는 신덕산은 합천의 황매산으로부터 뻗어온 줄기로 산세가 매우 웅장할 뿐만 아니라 우거진 잡목림에 경관이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수도사는 지금부터 약 1300여 년전, 신라의 30대 문무왕 2년 (66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라고는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 7왕자가 의령 수도산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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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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