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sitKorea OpenAPI
금정산성 공식 관광정보


+5금정산성은 금정산 꼭대기에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부민(東萊府民)이 난(亂)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난겸 항전성(抗戰城)이며,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산성이다. 1707년 동래 부사 한배하가 성이 넓다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을 쌓고 장대, 군기고 등의 시설을 보완하였다. 1806년 동래 부사 오한원이 성을 다시 수리하고 동문을 새로 쌓았으며, 서문, 남문, 북문에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금정산성에는 산성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산성마을에는 우리나라 민속 막걸리인 산성막걸리가 생산되고 있으며, 각종 음식점, 카페 등이 많아 관광객들이 휴식하기 좋은 관광지이다. 금정산성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대중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9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71.02.09
- 시대
- 삼국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 29년(1703)에 동래는 바닷길을 막는 중요한 지역으로 적이 침입하는 첫길목에 해당되지만 방어 시설이 소홀하다 하여 쌓은 곳이다. 전체길이는 약 18,845m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년(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년(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순조 6년(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 수량
- 818,177㎡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051-514-5501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여유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 김해국제공항연관 1위
- 신라스테이/해운대연관 2위
- 맥도날드/부산온천SK DT점연관 4위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부산광역시 · 금정구 · 관광지
금정산성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71.02.09
- 시대
- 삼국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 29년(1703)에 동래는 바닷길을 막는 중요한 지역으로 적이 침입하는 첫길목에 해당되지만 방어 시설이 소홀하다 하여 쌓은 곳이다. 전체길이는 약 18,845m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년(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년(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순조 6년(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 수량
- 818,177㎡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051-514-5501
VisitKorea OpenAPI
금정산성 공식 관광정보


+5금정산성은 금정산 꼭대기에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부민(東萊府民)이 난(亂)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난겸 항전성(抗戰城)이며,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산성이다. 1707년 동래 부사 한배하가 성이 넓다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을 쌓고 장대, 군기고 등의 시설을 보완하였다. 1806년 동래 부사 오한원이 성을 다시 수리하고 동문을 새로 쌓았으며, 서문, 남문, 북문에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금정산성에는 산성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산성마을에는 우리나라 민속 막걸리인 산성막걸리가 생산되고 있으며, 각종 음식점, 카페 등이 많아 관광객들이 휴식하기 좋은 관광지이다. 금정산성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대중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9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여유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 김해국제공항연관 1위
- 신라스테이/해운대연관 2위
- 맥도날드/부산온천SK DT점연관 4위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