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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지 공식 관광정보


+6동래읍성지는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 지역인 평탄 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역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어 있던 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읍성을 쌓았는데, 이때 쌓은 성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동래읍성의 기원이다. 동래읍성 성벽은 옛 벽돌 위에 새로운 벽돌을 쌓아 복원한 것이다. 성곽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옛것과 반질거리는 새것을 비교해 가며 걷는 재미가 있다. 여유와 한적함이 넘쳐나는 편안한 산책길 곳곳에 동래의 역사와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0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72.06.26
- 시대
- 고려말∼조선시대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동래읍성은 마안산을 거쳐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의 평탄한 지역을 포함하여 쌓은 읍성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현종 12년(1021)에 동래읍성을 수리하였으며, 그 뒤 우왕 13년(1387)에 왜구를 막기 위해 동래성을 크게 고쳐 쌓아 둘레가 3090자, 높이 13자라고 전한다.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인 이 성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부산 진성과 함께 왜적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7년(1731)에 다시 증축하여 당시 규모가 둘레 1729자였고, 4곳에 문을 만들었다. 동문을 지희루, 서문을 심성루, 남문을 무우루, 암문(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게 작게 꾸민 성문)을 은일루라 하였다. 남문에는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뻗은 성벽인 익성이 있고, 나머지 3개의 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성문밖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쌓은 옹성을 두어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평지의 성벽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마안산을 중심으로 성곽의 모습만 겨우 남아있다. 현재 북문과 옹성, 동장대, 서장대 등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어고 있다.
- 수량
- 119,994㎡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요금 (무료)
- 유모차
- 없음
- 전화
- 부산 동래구청 문화관광과 051-550-4081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보통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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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 동래구 · 관광지
동래읍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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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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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06.26
- 시대
- 고려말∼조선시대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동래읍성은 마안산을 거쳐 구릉지와 동래 시가지의 평탄한 지역을 포함하여 쌓은 읍성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현종 12년(1021)에 동래읍성을 수리하였으며, 그 뒤 우왕 13년(1387)에 왜구를 막기 위해 동래성을 크게 고쳐 쌓아 둘레가 3090자, 높이 13자라고 전한다.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인 이 성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부산 진성과 함께 왜적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7년(1731)에 다시 증축하여 당시 규모가 둘레 1729자였고, 4곳에 문을 만들었다. 동문을 지희루, 서문을 심성루, 남문을 무우루, 암문(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게 작게 꾸민 성문)을 은일루라 하였다. 남문에는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뻗은 성벽인 익성이 있고, 나머지 3개의 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성문밖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쌓은 옹성을 두어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고 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평지의 성벽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마안산을 중심으로 성곽의 모습만 겨우 남아있다. 현재 북문과 옹성, 동장대, 서장대 등이 부분적으로 복원되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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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994㎡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요금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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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
- 전화
- 부산 동래구청 문화관광과 051-550-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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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0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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