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재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 (북상면)35.7651, 127.7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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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재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06 · VisitKorea

거창 모리재는 동계 정온(1569~1641)선생을 기리기 위한 재실이다. 정온은 남명 조식의 학맥을 계승하고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에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에 부사직으로 재임하던 중 영창대군의 처형은 부당하다고 상소하고, 가해자인 강화부사 정항의 참수를 주장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 대정에서 1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모리재는 동계 정온이 사망한 뒤 선생의 덕과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역의 유림들이 지은 건물이다. 정문으로 사용된 화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중수한 것이며, 유생들의 생활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관리사로 쓰는 서무와 사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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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3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95.05.02
시대
1641
지정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유산 소개
모리재는 1637년 인조(仁祖)가 중국 청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정온(鄭蘊)선생은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으나 전의(典醫)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낙향하여 죽을 때가지 은거했던 곳을 기념하여 유림들이 건립한 재사(齎舍)로 사당 · 모리재 · 서무 · 화엽루 · 내삼문 · 협문 등과 유허비 1기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으로 사용된 화엽루(花葉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또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一)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齋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중수한 것이다.
수량
6동
개장일
연중개방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가능 (무료)
유모차
없음
전화
055-940-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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