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Korea OpenAPI
문창공영당 공식 관광정보


+2동구 향산 인근의 문창공영당은 통일신라시대 문장가이자 경주최씨 시조인 고운 최치원[857-?]의 영정이 봉안된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말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12세의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의 나이로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10여 년 동안 중앙관직과 지방관직을 거쳐 6두품의 신분으로서는 최고 관직인 아찬에까지 올랐다. 40여 세 때 관직을 버리고 은거 생활을 하다,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문창공영당은 1755년(영조 31) 지금 자리가 아닌 인근 대구 동구 해안동에 처음 창건한 계림사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864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12년 지금의 자리에 문창공영당을 중수했다. 매년 음력 3월 3일 향사를 지낸다. 영당 내부에 도교의 신선풍으로 묘사된 문창공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문창공영당은 영정각으로는 그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솟을지붕과 기둥머리 장식 또한 특색이 있어 조선 후기 목조건물의 전형과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6.02 기준- 지정일
- 1989.08.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근대/개항기, 근대/일제강점기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 1912년 그의 후손들이 세웠다. 시조가 남긴 업적을 후손에게 전한다는 이유 외에도 옛 현인을 모셔 백성들에게 민족의 정기를 심어주기 위한 뜻도 있었다. 최치원은 신라말의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12세의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의 나이로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10여년 동안 중앙관직과 지방관직을 거쳐 6두품의 신분으로서는 최고 관직인 아찬에까지 올랐다. 40여세 때 관직을 버리고 은거 생활을 하다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주위로 직사각형의 담장을 둘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고, 솟을대문에는 태극 모양을 그려 놓았다.
- 수량
- 2동
- 영업시간
- 방문 전 문의* 문화재 보호에서 폐문이 가능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53-982-3037 / 053-662-4105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대구광역시 · 동구 · 관광지
문창공영당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6.02 기준- 지정일
- 1989.08.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근대/개항기, 근대/일제강점기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 1912년 그의 후손들이 세웠다. 시조가 남긴 업적을 후손에게 전한다는 이유 외에도 옛 현인을 모셔 백성들에게 민족의 정기를 심어주기 위한 뜻도 있었다. 최치원은 신라말의 학자이자 문장가이다. 12세의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의 나이로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10여년 동안 중앙관직과 지방관직을 거쳐 6두품의 신분으로서는 최고 관직인 아찬에까지 올랐다. 40여세 때 관직을 버리고 은거 생활을 하다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주위로 직사각형의 담장을 둘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고, 솟을대문에는 태극 모양을 그려 놓았다.
- 수량
- 2동
- 영업시간
- 방문 전 문의* 문화재 보호에서 폐문이 가능
- 주차
- 가능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53-982-3037 / 053-662-4105
VisitKorea OpenAPI
문창공영당 공식 관광정보


+2동구 향산 인근의 문창공영당은 통일신라시대 문장가이자 경주최씨 시조인 고운 최치원[857-?]의 영정이 봉안된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말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12세의 나이로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의 나이로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와 10여 년 동안 중앙관직과 지방관직을 거쳐 6두품의 신분으로서는 최고 관직인 아찬에까지 올랐다. 40여 세 때 관직을 버리고 은거 생활을 하다,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문창공영당은 1755년(영조 31) 지금 자리가 아닌 인근 대구 동구 해안동에 처음 창건한 계림사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864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12년 지금의 자리에 문창공영당을 중수했다. 매년 음력 3월 3일 향사를 지낸다. 영당 내부에 도교의 신선풍으로 묘사된 문창공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문창공영당은 영정각으로는 그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솟을지붕과 기둥머리 장식 또한 특색이 있어 조선 후기 목조건물의 전형과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5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아직 붐빔 예보나 대안 장소가 없습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문창후 최치원 영정관광지
바로 옆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관광지
걸어서 5분쯤
백림정맛집
걸어서 6분쯤
관음사(대구)관광지
걸어서 7분쯤
백원서원관광지
걸어서 9분쯤
용암산성오토캠핑장관광지
걸어서 18분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