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 (어남동)36.2326, 127.4108

VisitKorea OpenAPI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14 · VisitKorea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신채호 선생은 이곳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북 청주로 이사를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년 2월 21일 옥사하였다. 1992년 여름, 선생의 생가를 발굴 조사하고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선생의 생가를 초가집으로 복원하였으며 신채호의 동상도 설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에 1991년 7월 10일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 주차

관광정보: 한국관광공사 VisitKorea OpenAPI

이 화면의 구성은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추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2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91.07.10
지정 종목
시도기념물
유산 소개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생가이다. 신채호는 한말 일제시대에 역사가,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했으며 26세가 되던 해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 기자가 되었다. 1905년 황성신문이 폐간되자, 그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초빙되어 당당한 시론을 써 민중을 계몽하고 정부를 편달하였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톡에서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임통치에 반대하였다. 1923년 의열단의 이념과 운동방향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은 항일민족 운동사상 가장 강건하고 웅장하면서 정교하게 독립운동의 이론과 방향을 제시한 문서로 손꼽힌다. 선생은 1928년 대만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뇌일혈로 순국하였다. 1992년 여름, 선생의 생가를 발굴 조사하고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였다.
수량
661㎡
영업시간
상시 개방
주차
가능
유모차
없음
전화
042-606-6286

붐빔 예보와 대안 장소를 불러왔습니다.

붐빔·추천코스

오늘 보통실시간·장소 간 비교 아님
최근 수집 2026. 9. 25. 오후 12:40예보 범위 9. 25.–10. 8.

한국관광공사 30일 방문 집중 예측 — 이 장소의 최근 예측 범위 안에서 상대적인 위치입니다. 붐빌 것 같은 날은 아래 대안이나 이른 시간을 고려해 보세요.

붐빌 땐, 대신 가볼 만한 곳

한국관광공사 연관 방문 데이터 기반 — 점선 항목은 아직 상세 정보가 연결되지 않았고, 붐빔 표시가 없는 곳은 한적함을 확인하지 못한 후보입니다.

이 장소 정보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서비스(Open API)를 바탕으로 합니다.

함께 가면 좋은 곳

승인된 코스·여행 글·공식 이동 통계에서 이 장소와 묶였거나,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곳들입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