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171-135.1969, 127.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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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06 · VisitKorea

석주관 칠의사묘는 정유재란 때 전라도 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 출신 의사(義士) 7분과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당시 구례 현감을 모신 무덤이다. 왼쪽부터 현감 이원춘, 칠의사 왕득인,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왕의성이다. 석주관은 경상도 지방에서 전라도 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으로 고려 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호남 지방을 목표로 이곳을 공격하였는데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다 숨지고, 그의 아들이 각 지역의 의병, 승병들과 대항하다 대부분의 의병들이 희생되었다. 순조 4년(1804) 나라에서 왕득인을 포함한 7명의 의사에게 각각 관직이 내려졌고, 1946년에는 뜻있는 지방 유지들에 의해 칠의각과 영모정이 세워졌다. 석주관 칠의사묘 맞은편에 구례석주관성이 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약 3분, 2.8㎞ 거리에 간전교를 지나 왼쪽으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으며, 섬진강대로를 따라 약 5.7㎞를 더 가면 운조루 고택을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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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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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 한국관광공사 (KTO) 인증 정보

확인된 정보

국가유산청 · 2026.02 기준
지정일
1963.01.21
시대
조선시대
지정 종목
사적
유산 소개
정유재란 때 전라도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사(義士) 7명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경상도지방에서 전라도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안음의 황석산성·진안 웅치·운봉 팔량치와 함께 영남과 호남 사이의 4대 관문의 하나로, 고려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호남지방을 목표로 하여 이곳을 집중공격하였다. 그러자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적에게 대항하였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후 왕득인(王得仁)의 아들과 각 지역에서 모여든 의병·승병들이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역시 대부분의 의병을 희생시킨 채 끝나고 말았다. 순조 4년(1804) 나라에서 왕득인을 포함한 7명의 의사에게 각각 관직이 내려졌고, 1946년에는 뜻있는 지방 유지들에 의해 칠의각과 영모정이 세워졌다. <br/><b>※(석주관칠의사묘 →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수량
10,152㎡
영업시간
09:00~18:00
주차
가능
전화
061-780-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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