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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서원 공식 관광정보


+6미천서원은 영산포에서 다시면으로 가는 길목인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의 철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의 강당 뒤편에는 미천 서원의 유래가 된 ‘미천'이라는 샘이 있다. 허목 선생이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이 우물이 없어서 팔 생각을 못하자 이에 '내가 일러준 곳을 파보면 물이 나올 것이다'고 이야기하였다. 과연 그 곳에서는 물이 솟아나와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샘의 이름을 미천[眉泉]이라 부르고 이에 서원 이름의 연원이 된것이라고 한다. 이 서원은 17세기 조선시대 명현인 문정공 미수 허목의 도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16년(1690)에 나주 금강 미천상에 사우로 건립되었다가 1693년 미천서원이라고 사액되었다. 이후 정조 23년(1799)에는 13대 미천서원 원장을 지낸 번암 채제공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채제공은 허목보다 훨씬 후대 인물이지만 허목의 학문을 따르고 미천서원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추배하게 된 것이다. 1711년 홍명한이 중수하고 1715년에는 강당과 재실을 중수하였다. 그 후 철폐되었다가 영조 47년(1771) 이전에 사우가 중건된 후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2차 철폐을 당하였다. 서원이 철폐되자 영당과 장판각은 허목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주시 삼영동 선산 아래의 영당마을로 옮겨졌다. 1893년에 다시 미천서원의 옛 터인 지금의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영당이 복설되어 현재의 자리로 영정을 이안하였으며 정면 6칸, 측면 3칸의 강당도 함께 중건되었다. 1930년 조기중이 강당 일부를 중수하였고 1937년 허영규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4분, 약 2.8km거리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와 나주철도공원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9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77.10.20
- 시대
- 조선후기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후기 문신인 허목(1595∼168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허목은 여러 벼슬을 거쳐 이조참판과 우의정을 역임한 분으로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전서에 뛰어났다. 숙종 5년(1679)에는 고향인 경기도 연천으로 돌아와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숙종 16년(1690)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19년(1693)에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미천’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정조 23년(1799)에 조선 후기 무신인 채제공(1720∼1799)을 추가로 모시고 섬기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고, 고종 29년(1892) 지금 있는 자리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 외에 목판이 보관된 장판각, 서원 관리인이 생활하던 고사가 있다. 사당인 영정각은 허목과 채제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강당은 교육 장소 및 유림의 회합 장소로 가운데에는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수량
- 일원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61-330-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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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빔·추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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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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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6.0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77.10.20
- 시대
- 조선후기
- 지정 종목
- 시도기념물
- 유산 소개
- 조선 후기 문신인 허목(1595∼168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허목은 여러 벼슬을 거쳐 이조참판과 우의정을 역임한 분으로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전서에 뛰어났다. 숙종 5년(1679)에는 고향인 경기도 연천으로 돌아와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숙종 16년(1690)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19년(1693)에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미천’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정조 23년(1799)에 조선 후기 무신인 채제공(1720∼1799)을 추가로 모시고 섬기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고, 고종 29년(1892) 지금 있는 자리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 외에 목판이 보관된 장판각, 서원 관리인이 생활하던 고사가 있다. 사당인 영정각은 허목과 채제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강당은 교육 장소 및 유림의 회합 장소로 가운데에는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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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원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유모차
- 없음
- 전화
- 061-330-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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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천서원은 영산포에서 다시면으로 가는 길목인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의 철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서원의 강당 뒤편에는 미천 서원의 유래가 된 ‘미천'이라는 샘이 있다. 허목 선생이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이 우물이 없어서 팔 생각을 못하자 이에 '내가 일러준 곳을 파보면 물이 나올 것이다'고 이야기하였다. 과연 그 곳에서는 물이 솟아나와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샘의 이름을 미천[眉泉]이라 부르고 이에 서원 이름의 연원이 된것이라고 한다. 이 서원은 17세기 조선시대 명현인 문정공 미수 허목의 도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16년(1690)에 나주 금강 미천상에 사우로 건립되었다가 1693년 미천서원이라고 사액되었다. 이후 정조 23년(1799)에는 13대 미천서원 원장을 지낸 번암 채제공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채제공은 허목보다 훨씬 후대 인물이지만 허목의 학문을 따르고 미천서원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추배하게 된 것이다. 1711년 홍명한이 중수하고 1715년에는 강당과 재실을 중수하였다. 그 후 철폐되었다가 영조 47년(1771) 이전에 사우가 중건된 후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으로 2차 철폐을 당하였다. 서원이 철폐되자 영당과 장판각은 허목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주시 삼영동 선산 아래의 영당마을로 옮겨졌다. 1893년에 다시 미천서원의 옛 터인 지금의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영당이 복설되어 현재의 자리로 영정을 이안하였으며 정면 6칸, 측면 3칸의 강당도 함께 중건되었다. 1930년 조기중이 강당 일부를 중수하였고 1937년 허영규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4분, 약 2.8km거리에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와 나주철도공원이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9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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