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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청사(부산) 공식 관광정보


+2국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 숙종 29년 금정산성 축조와 함께 중수하여 이름을 국청사라 칭하고 순조 26년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지(國淸寺誌)에 '국청사에는 동래 부사 송상현,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 등과 함께 승장 만홍, 정안, 성관, 관찰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임진왜란 때 이미 의승군의 숙영지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703년 금정산성이 개축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 국청사는 최근 들어 중창을 거듭하였다. 1978년 삼성각을 지었고, 1982년 승려 창봉과 혜성이 경내에 있는 연못 중앙에 3층 석탑을 조성하였다. 1992년 대웅전을 지었고, 1998년 요사를 지었으며, 2010년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국청사에는 조선 시대 승병장이 사용하던 금정산성 승장인이라는 철제 도장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자료를 통해 승군 작대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국청사와 해월사 모두 산성을 방어했던 호국 사찰로, 국청사에는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하여 전략 기지의 역할을 한 의승군의 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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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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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6.01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2008.09.11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국청사는 신라시대부터 있던 절이지만 절 이름은 알 수 없고, 다만 숙종 29년(1703) 산성 수축 후 개방수호의 의미로 국청사라 칭하고 사우(寺宇)를 크게 중건하였다. 주로 승당(僧堂)이나 선당(禪堂) 등 승려의 거처가 많이 건립되었으며, 전체가 거의 100간 규모였다. 금정산성승장인은 이러한 배경 아래서 승병의 통솔 및 관할을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국대전≫ <예전 용인조(用印條)>에 의하면 모든 관리는 질품에 따라 크기가 다른 인식을 사용하였는데, 참상관 이상의 품관은 정방형 인장, 차하관이나 토관(土官)은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승장인도 토관의 예에 준해 장방형의 인장이다. 인장 전체가 유제로 손잡이 부분과 함께 한 틀에 주조되어 있는 이 인장은 예서로「금정산성승장인(金井山城僧將印)」이라는 7자를 새겼는데, 향좌에 종서(縱書)로 금정산성(金井山城) 4자, 향우에 승장인(僧將印) 3자가 새겨져되어 있으며, 또한 윗면에는 음각으로 ‘상(上)’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국청사 유제 금정산성승장인은 국청사의 성격과 금정산성의 승병 관계를 실증적으로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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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 개방 ※ 자세한 사항은 전화문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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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
- 051-517-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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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청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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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청사는 신라시대부터 있던 절이지만 절 이름은 알 수 없고, 다만 숙종 29년(1703) 산성 수축 후 개방수호의 의미로 국청사라 칭하고 사우(寺宇)를 크게 중건하였다. 주로 승당(僧堂)이나 선당(禪堂) 등 승려의 거처가 많이 건립되었으며, 전체가 거의 100간 규모였다. 금정산성승장인은 이러한 배경 아래서 승병의 통솔 및 관할을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국대전≫ <예전 용인조(用印條)>에 의하면 모든 관리는 질품에 따라 크기가 다른 인식을 사용하였는데, 참상관 이상의 품관은 정방형 인장, 차하관이나 토관(土官)은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승장인도 토관의 예에 준해 장방형의 인장이다. 인장 전체가 유제로 손잡이 부분과 함께 한 틀에 주조되어 있는 이 인장은 예서로「금정산성승장인(金井山城僧將印)」이라는 7자를 새겼는데, 향좌에 종서(縱書)로 금정산성(金井山城) 4자, 향우에 승장인(僧將印) 3자가 새겨져되어 있으며, 또한 윗면에는 음각으로 ‘상(上)’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국청사 유제 금정산성승장인은 국청사의 성격과 금정산성의 승병 관계를 실증적으로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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