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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릉(문정왕후)과 강릉(명종·인순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식 관광정보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능이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를 문정왕후의 능 자리로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하여 당시 봉은사의 주지인 보우와 의논하여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옆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명종은 어머니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정하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릉·정릉과 마찬가지로 태릉과 강릉에도 왜적들에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릉은 『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라 조성되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원래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긴 것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조성할 때만 적용되었는데, 태릉을 시작으로 십이지신상과 문자를 함께 새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능침 문석인과 무석인, 장명등 등 석물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크게 세웠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의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능이다. 강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명종, 오른쪽(동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강릉은 1567년(명종 22) 명종이 어머니 문정왕후의 삼년상을 마친 후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나자, 태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이후 1575년(선조 8) 인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능 동쪽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문정왕후의 태릉을 조성한 지 2년 뒤에 조성된 능이기 때문에 태릉과 모습이 비슷하다. 두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하였다.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등을 배치하였고,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이 있다.
- 문화재 (자연)
- 1
- ✓ 주차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1 기준- 휴무
- 매주 월요일 ※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방하며, 그 다음 첫 번째 평일에 휴관
- 지정일
- 1970.05.26
- 시대
- 조선 명종 20년(1565)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본관은 파평으로 중종의 두번째 왕비인 장경왕후가 1515년 죽자 1517년에 17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려 하였으나 장마철 침수로 인하여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무덤은 십이지신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12면으로 된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무덤 앞에는 상석·망주석 등이 『국조오례의』에 따라 제작되었다. 무덤 아래에는 한국 전쟁시 훼손되었다가 1995년 다시 지은 정자각이 있다. 사람모양의 돌조각상(석인)은 4등신으로 입체감이 표현되지 않았는데, 당시 석인의 특징을 보여준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무덤이다. 태릉과 같은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br/><b>※(태릉·강릉 → 서울 태릉과 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 수량
- 1,619,903㎡
- 영업시간
- - 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 9월~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 주차
- 가능
- 전화
- 02-972-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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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릉(문정왕후)과 강릉(명종·인순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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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 2026.01 기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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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05.26
- 시대
- 조선 명종 20년(1565)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무덤이다. 본관은 파평으로 중종의 두번째 왕비인 장경왕후가 1515년 죽자 1517년에 17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려 하였으나 장마철 침수로 인하여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무덤은 십이지신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12면으로 된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무덤 앞에는 상석·망주석 등이 『국조오례의』에 따라 제작되었다. 무덤 아래에는 한국 전쟁시 훼손되었다가 1995년 다시 지은 정자각이 있다. 사람모양의 돌조각상(석인)은 4등신으로 입체감이 표현되지 않았는데, 당시 석인의 특징을 보여준다. 강릉은 조선 제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그의 부인인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무덤이다. 태릉과 같은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br/><b>※(태릉·강릉 → 서울 태릉과 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 수량
- 1,619,903㎡
- 영업시간
- - 2월~5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 6월~8월 09:00~18:30 (입장마감 17:30) - 9월~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00) -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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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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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72-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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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릉(문정왕후)과 강릉(명종·인순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식 관광정보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능이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를 문정왕후의 능 자리로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하여 당시 봉은사의 주지인 보우와 의논하여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옆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명종은 어머니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정하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릉·정릉과 마찬가지로 태릉과 강릉에도 왜적들에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릉은 『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라 조성되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원래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긴 것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조성할 때만 적용되었는데, 태릉을 시작으로 십이지신상과 문자를 함께 새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능침 문석인과 무석인, 장명등 등 석물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크게 세웠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의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능이다. 강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명종, 오른쪽(동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강릉은 1567년(명종 22) 명종이 어머니 문정왕후의 삼년상을 마친 후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나자, 태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이후 1575년(선조 8) 인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능 동쪽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문정왕후의 태릉을 조성한 지 2년 뒤에 조성된 능이기 때문에 태릉과 모습이 비슷하다. 두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하였다.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등을 배치하였고,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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