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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청해진 유적 공식 관광정보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에 있다. 장좌리 마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쯤 되고 하루 두 차례씩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 있었다. 간조시에만 장도 청해진 유적지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으나, 2009년 장도목교를 설치한 후로는 탐방객들이 목교를 건너 청해진유적지로 자유롭게 도보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청해진은 통일신라시대 때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청해진이 있었던 장도는 섬 전체에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유적지 내에는 1만 명의 식수정으로 사용하였다는 청해정이 있어 지금도 맑은 물이 솟으며, 토성의 일부와 기와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 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 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현대에 들어 장도는 완도 주민이 농사를 짓던 곳인데, 1959년 태풍 사라 때 갯벌이 깎여 목책이 드러나면서 청해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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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1 기준- 수용 인원
- 2,000명
-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4.09.01
- 시대
- 신라시대
- 지정 종목
- 사적
- 유산 소개
-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섬인 장도에 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에 분개하여 신라에 돌아와 왕의 허락을 받고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다. 장도는 섬 전체가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성터 안에는 토기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인근에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가 남아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br/><b>※(청해진유적 → 완도 청해진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수량
- 239,312㎡
- 영업시간
- 상시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061-550-5145, 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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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 완도군 · 관광지
완도 청해진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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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섬인 장도에 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에 분개하여 신라에 돌아와 왕의 허락을 받고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다. 장도는 섬 전체가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성터 안에는 토기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인근에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가 남아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br/><b>※(청해진유적 → 완도 청해진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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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에 있다. 장좌리 마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쯤 되고 하루 두 차례씩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 있었다. 간조시에만 장도 청해진 유적지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으나, 2009년 장도목교를 설치한 후로는 탐방객들이 목교를 건너 청해진유적지로 자유롭게 도보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청해진은 통일신라시대 때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청해진이 있었던 장도는 섬 전체에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유적지 내에는 1만 명의 식수정으로 사용하였다는 청해정이 있어 지금도 맑은 물이 솟으며, 토성의 일부와 기와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 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 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현대에 들어 장도는 완도 주민이 농사를 짓던 곳인데, 1959년 태풍 사라 때 갯벌이 깎여 목책이 드러나면서 청해진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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