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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암(진주) 공식 관광정보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년) 풍수지리학 개산조이신 도선국사께서 백두산의 정기는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뻗은 거맥이 한수 이북에는 삼각산에 머물고, 한수 이남에는 여항산에 맺혔다 하고 성인이 계시는 대찰이라 성전암으로 이름하여 창건하였다. 성전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며, 조선 시대에서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에 16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암자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인조각을 세워 오늘날까지 제향을 올리고 있고, 임금이 계셨다 하여 아랫마을을 장안리라고 부르고 있으며, 인조각은 인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영남 지방의 기도처로 명성이 나 있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 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 큰 화재로 대웅전과 종무소, 나한전 등 건물 9개 동은 다 타버렸으나, 인조대왕 위패가 있는 인조대왕각은 화재를 피했다. 2014년 9월 방화범에 의한 화재로 전각이 불탔으나, 목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을 비롯한 대웅전 삼존불 등 문화유산은 스님들이 화재 속에서도 밖으로 보존해 화마를 피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6.01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2000.01.31
- 시대
- 조선 인조 22년(1644)
- 지정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성전암 대웅전에 봉안된 이 여래상은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한데, 머리에 상투모양과 구슬이 표현되어 있고 입은 꼭 다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여래의 9가지 손모양중 하품하생인을 연출하였다. 불상의 배 안에서 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성전암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삼각산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절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조(재위 1623∼1649)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국난 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이 절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 수량
- 1좌(座)
- 영업시간
- 상시 개방
- 주차
- 가능
- 전화
- 055-754-7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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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 진주시 · 관광지
성전암(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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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조선 인조 22년(1644)
- 지정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 유산 소개
- 성전암 대웅전에 봉안된 이 여래상은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상태는 아주 양호한데, 머리에 상투모양과 구슬이 표현되어 있고 입은 꼭 다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여래의 9가지 손모양중 하품하생인을 연출하였다. 불상의 배 안에서 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성전암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삼각산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절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조(재위 1623∼1649)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국난 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한다. 이 절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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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년) 풍수지리학 개산조이신 도선국사께서 백두산의 정기는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뻗은 거맥이 한수 이북에는 삼각산에 머물고, 한수 이남에는 여항산에 맺혔다 하고 성인이 계시는 대찰이라 성전암으로 이름하여 창건하였다. 성전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며, 조선 시대에서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에 16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암자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인조각을 세워 오늘날까지 제향을 올리고 있고, 임금이 계셨다 하여 아랫마을을 장안리라고 부르고 있으며, 인조각은 인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영남 지방의 기도처로 명성이 나 있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 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 큰 화재로 대웅전과 종무소, 나한전 등 건물 9개 동은 다 타버렸으나, 인조대왕 위패가 있는 인조대왕각은 화재를 피했다. 2014년 9월 방화범에 의한 화재로 전각이 불탔으나, 목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을 비롯한 대웅전 삼존불 등 문화유산은 스님들이 화재 속에서도 밖으로 보존해 화마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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