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36.7876, 127.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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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묘 공식 관광정보

관광지 양식 · contentTypeId 12갱신 2026.06.06 · VisitKorea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기은 박문수(1691∼1756)의 묘소이다. 박문수는 조선 영조 때의 재상으로, 자는 성보, 호는 기은이다. 그는 왕명을 받고 여러번 어사로 출사하여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어려운 백성을 구휼하는 등 그 공로가 인정되어 훗날 영의정이 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일대는 박문수의 사패지(임금이 내려준 논과 밭)로 알려져 있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에 녹훈되면서 이 지역의 땅을 하사받았고 사후에 은지리 은석산에 장사 지내면서 고령 박씨가 천안에 거주하게 되었다. 묘 자리를 박문수 스스로 정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현재 그의 묘는 은석산 정상 부근 양지바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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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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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연중무휴
지정일
1984.05.17
지정 종목
문화유산자료
유산 소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암행어사로 유명했던 기은(耆隱) 박문수(1691∼1756)의 묘소이다.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성군에 봉해졌다. 영조 5년(1729) 영남절도사로 있을 때 함경도지방에 수재가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영남 제민창에 있던 조 3천석을 보내어 10여 고을의 수재민을 구하였으므로 후에 함흥 만세교 옆에 북민비라는 송덕비가 세워졌다. 왕명을 받고 여러 번 어사로 나가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어려운 백성들의 구제에 힘썼으며, 1741년 어영대장이 되어 국토방위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조 25년(1749) 호조판서로 있을 때 다른 신하들과 함께『탁지정례』를 출판하여 국가경비를 절감하였으며, 죽은 뒤에는 벼슬이 영의정으로 높여졌다. 묘는 천안시 광덕면 은덕산 정상부에 있으며, 묘의 앞에는 상석·묘비·망주석·무인석 등이 있다. 묘소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재실(齋室)이 있으며, 재실 내에는 영정 2폭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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