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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서원 공식 관광정보
신천서원은 조선 전기의 공신 맹암 김영렬(?~1404)의 가르침을 잇고 후손을 가르치기 위해 1945년에 세웠다. 김영렬은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태종 1년(1401) 좌명공신 3등에 오른다. 태종 4년(1404) 참판승추부사로 있을 때 왜선 1척을 싸워 빼앗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을 세웠다. 후에 우의정에 증직 되었다. 신천서원은 왕신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솔 숲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전사청인 사주각(祀厨閣)이 있고, 정면에는 교육공간인 강당이 있다. 강당 뒤로는 내삼문인 남덕문(覽德門)을 지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경훈사(景勳祠)가 있다. 경훈사에는 태종의 글씨인 단서(丹書)와 김영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 ✓ 주차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1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5.08.05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맹암 김영렬(∼1404)의 유지를 받들고 후손을 교육시키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영렬은 조선 전기 무신이다.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태종 1년(1401) 익대좌명공신 3등에 오른다. 태종 4년(1404) 참판승추부사로 있을 때 왜선 1척을 싸워 빼앗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을 세웠다. 후에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신천서원은 1945년에 세운 건물로 왕신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솔 숲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원 안에는 제사 공간인 경훈사와 교육 공간인 강당, 남덕문(覽德門), 출입문 등의 건물이 있고, 밖에는 신도비가 있다. 사당인 경훈사에는 태종의 글씨인 단서(丹書)와 김영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 서원은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의 사당과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의 강당만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데, 영남지방의 고아한 멋이 묻어 나는 건축물이다.
- 수량
- 2동
- 영업시간
- ※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주차
- 가능
- 전화
-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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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 예천군 · 관광지
신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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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5.08.05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맹암 김영렬(∼1404)의 유지를 받들고 후손을 교육시키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영렬은 조선 전기 무신이다.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태종 1년(1401) 익대좌명공신 3등에 오른다. 태종 4년(1404) 참판승추부사로 있을 때 왜선 1척을 싸워 빼앗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을 세웠다. 후에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신천서원은 1945년에 세운 건물로 왕신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솔 숲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원 안에는 제사 공간인 경훈사와 교육 공간인 강당, 남덕문(覽德門), 출입문 등의 건물이 있고, 밖에는 신도비가 있다. 사당인 경훈사에는 태종의 글씨인 단서(丹書)와 김영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 서원은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의 사당과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의 강당만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데, 영남지방의 고아한 멋이 묻어 나는 건축물이다.
- 수량
- 2동
- 영업시간
- ※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주차
- 가능
- 전화
-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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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서원은 조선 전기의 공신 맹암 김영렬(?~1404)의 가르침을 잇고 후손을 가르치기 위해 1945년에 세웠다. 김영렬은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태종 1년(1401) 좌명공신 3등에 오른다. 태종 4년(1404) 참판승추부사로 있을 때 왜선 1척을 싸워 빼앗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을 세웠다. 후에 우의정에 증직 되었다. 신천서원은 왕신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솔 숲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전사청인 사주각(祀厨閣)이 있고, 정면에는 교육공간인 강당이 있다. 강당 뒤로는 내삼문인 남덕문(覽德門)을 지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경훈사(景勳祠)가 있다. 경훈사에는 태종의 글씨인 단서(丹書)와 김영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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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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