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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강당 공식 관광정보


+2삼강강당은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셋째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특히 필법이 탁월해서 초서의 대가로 존경받았다. 삼강강당의 건물은 삼강마을 동쪽에 있으며 낙동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강당의 오른쪽에는 학당이 있다. 뒤쪽은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의 2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이고, 좌우에는 온돌방 1칸씩 두었다. 강당에 걸린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는 정윤목이 선조 22년(1589)에 부친을 따라 명나라에 갔을 때 백이·숙제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그곳의 글씨를 본떠 온 것이다. 학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오른쪽에 부엌이 있고, 나머지 3칸에는 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지붕 가구나 창문틀 등에서 조선 중기의 예스러운 건축 구조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8.09.23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지방으로 내려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삼강마을 동쪽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이 강당은 앞쪽으로 둥근기둥을 세우고 옆면과 뒤쪽으로는 네모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 가운데에 개방된 구조의 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는 정윤목이 선조 22년(1589)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가서 백이숙제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올 때 베껴온 것이다. 경내에는 자연석 위에 세운 작은 규모의 학당채가 함께 남아 있다.
- 수량
- 2동
- 영업시간
- ※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전화
-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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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 예천군 · 관광지
삼강강당
장소 명예 보드아직 첫 사진과 장소 마스터가 비어 있어요.
첫 사진확인된 정보
한국관광공사 · 2025.12 기준- 휴무
- 연중무휴
- 지정일
- 1988.09.23
- 지정 종목
- 문화유산자료
- 유산 소개
-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지방으로 내려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삼강마을 동쪽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이 강당은 앞쪽으로 둥근기둥을 세우고 옆면과 뒤쪽으로는 네모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 가운데에 개방된 구조의 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는 정윤목이 선조 22년(1589)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가서 백이숙제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올 때 베껴온 것이다. 경내에는 자연석 위에 세운 작은 규모의 학당채가 함께 남아 있다.
- 수량
- 2동
- 영업시간
- ※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 전화
-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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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삼강강당은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셋째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의 가르침을 받아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특히 필법이 탁월해서 초서의 대가로 존경받았다. 삼강강당의 건물은 삼강마을 동쪽에 있으며 낙동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강당의 오른쪽에는 학당이 있다. 뒤쪽은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의 2칸은 우물마루를 깐 대청이고, 좌우에는 온돌방 1칸씩 두었다. 강당에 걸린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는 정윤목이 선조 22년(1589)에 부친을 따라 명나라에 갔을 때 백이·숙제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그곳의 글씨를 본떠 온 것이다. 학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오른쪽에 부엌이 있고, 나머지 3칸에는 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지붕 가구나 창문틀 등에서 조선 중기의 예스러운 건축 구조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사진들을 가져온 사진입니다 (6장).
출처 · 한국관광공사
촬영자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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